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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알 수 없는 조각, 주님 찾는 여정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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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태 교수


▲ 최종태 교수

▲ 최종태 교수



“‘완벽’, ‘완전’에 다가가려고 여태껏 계속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완벽에는 도달을 못 해요. 그게 예술의 한계가 아닌가 싶어요. 사람의 한계인 거죠.”

11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영원의 갈망(The Longing of Eternity)’을 열고 있는 원로 조각가 최종태(요셉, 86,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미수(米壽, 88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유를 묻자 철학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전시회 주제가 대답이었다. 최 교수는 “하느님과 함께 가고 싶은 건데, 거기를 못 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회 개막 하루 전날 서울 연남동 자택에서 만난 최 교수는 “조각을 60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제야 일(작품활동)이 즐겁다”며 미소지었다.

올해는 최 교수가 1958년 대학을 졸업하고 조각가로 삶을 내디딘 지, 그리고 영세한 지 꼭 60주년이 되는 해다. 마침 서울대 총동문회에선 몇 달 전 졸업 60주년 축하 배지를 그에게 보내왔다. ‘졸업 60년을 맞이하도록 건강히 살아주심에 감사하다’는 편지와 함께. 최 교수는 대학 시절까지 합치면 64년간 조각을 인생의 화두로 삼고 살았다. 11월 4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선 2015년 화업 60주년 회고전 이후 새로 제작한 환조와 회화 등 70여 점이 전시된다.

그는 서울대교구 세 번째 성당이자 등록문화재 제230호인 혜화동성당 입구에 있는 성모상과 성 베네딕토상 제작자로 널리 알려진 한국 교회 성미술계 대부다. 서울 길상사 관음보살상을 제작, 종교 간 화합을 주도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영세 전인 대학 시절 한때 불교에 심취해 있었던 인연으로 지금도 불교계 인사들이 종종 그의 집을 찾아온다. 그래선지 최 교수의 작품에는 서양 조각으로 대변되는 현대 조각의 냉철한 이미지와 함께 푸근하고 둥그스레한 동양의 아름다움이 한 작품 안에 녹아 있다.

“60년 넘게 조각을 해보니 이제야 머리가 풀렸어요. 전엔 어떻게 그릴까 고민했는데 요새는 마음대로 만들어요. 예술이란 게 어려운 건데 요새는 일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어요. 경지에 올랐다고 할까.”

최 교수는 인생 전환기 때마다 좋은 스승을 만난 덕분에 평생을 조각가로 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 서예를 잘해 도 대회 1등을 한 것을 계기로 문학인의 길을 걸으려 했던 그는 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서양화가 이동훈(1903~1984)을 만나면서 미술에 눈을 떴다. 그는 “서울대 조각과로 진학한 것은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 선생님과 조각가 김종영(프란치스코, 1915~1982) 선생님을 만난 덕분”이라고 말했다. 장욱진과 김종영은 한국 미술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이들이다.

그에게 ‘조각의 정의’를 물었다.

“쉰 살 때 조각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어느 날 머릿속에 한마디가 떠오르더군요. ‘조각은 모르는 것이다’. 아직 답이 뭔지 모르지만, 그게 해답이라고 여겨요. 작품을 계속 만드는 것도 모르는 것 그 무언가를 찾아가는 여정이지요. 신앙인이 늘 주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처럼요.”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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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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