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생명/생활/문화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하느님을 ‘아빠’로 여기는가

예수-우리의 발걸음을 아빠 하느님께로/ 송봉모 지음/ 바오로딸/ 1만 6000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마태 6,9)

예수님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자, 이를 본 유다인들은 하나같이 ‘아니, 어찌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른담?’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유다인들은 전통적으로 죄 많은 인간의 입술로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불경한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높고 멀리 계시는 것으로 여겼던 하느님을 당장 바로 곁에 계신 분, 인격적으로 가깝고 애정 깊은 아버지로 여기도록 처음 일깨운 분이셨다.

송봉모(예수회) 신부가 펴낸 「예수 - 우리의 발걸음을 아빠 하느님께로」는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나와 더욱 가까운 아빠로 여기도록 만들어주는 책이다. 하느님을 머나먼 하늘나라의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 아니라, 가까이서 내게 은총을 주고, 너른 품을 제공해주는 아빠로 여기도록 돕는다. 더불어 ‘주님의 기도’의 의미와 함께, 아빠를 닮기 위한 가르침인 예수님의 ‘행복 선언’에 관한 강론이 담겨 있다.

주님의 기도와 성경 구절마다 나오는 ‘아버지’를 ‘아빠’로 고쳐 발음해보자.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간 느낌이 들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언제든 어리광 피울 수 있고, 힘들고 아플 때 매달릴 수 있는 ‘아빠’다. 실제 마태오ㆍ루카 복음서는 그리스어로 하느님을 ‘파테르’, 곧 ‘아빠’라고 썼다.

간혹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을 다르게 보는 이들이 있다. 특히 구약의 하느님을 심판자이자, 꾸짖는 아버지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의 하느님은 분노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격정’하는 분이시다. 송 신부는 “하느님의 격정은 우리의 선을 위한, 하느님과 우리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돌봄의 행동”이라며 우리도 모르게 잘못 인식하고 있는 ‘율법주의적 태도’를 돌아볼 것을 권한다. ‘하늘의 아빠’는 돌봄과 자비를 베푸는 참 아버지이신 것이다. 루카복음에 등장하는 ‘되찾은 아들들의 비유’에서 아빠는 집에 있는 큰아들이든, 집을 나가 고생하다 돌아온 작은아들이든 기쁜 마음으로 품에 안아 맞아주지 않는가.

예수님은 우리가 아버지 하느님 나라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셨다.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지니며 ‘성화’ 될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 바로 ‘행복 선언’이다. 우리는 마음이 가난하기 위해 교만하지 않을 줄 알아야 하며, 남의 고통에 함께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사람의 눈물을 닦고 위로해주신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아빠의 이름은 거룩히 빛날 것이다.

이정훈 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5-22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18

마태 23장 11절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