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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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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49) 새벽을 기다리며 / 박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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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이 얼얼하도록 기온이 뚝 떨어지고 바람까지 거칠게 불어대는 날, 산양을 찾아 산비탈을 오르다 우묵하게 들어간 바위에 기대어 엷은 햇살에 몸을 맡기고 앉았다.

따뜻함이 배어들고 나른해지면 졸음에 겨워 눈을 감는다. 숲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고 나무들이 삐걱거리며 춤판이 벌어진다.

바람소리는 멀어지고 순간의 고요와 정적이 숲에 내리면 모든 것은 그냥 그렇게 있을 뿐, 있음도 없는 그런 있음이 영원으로 끌고 갈 것 같은 느린 시간이 이어진다.

정적을 깨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일어선다. 산양이 다니는 길을 따라 가파른 바위절벽을 타고 오르며 흔적을 찾는다. 흔들림 없이 이어지는 발자국은 뒤쫓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음산한 응달을 벗어나 산줄기를 넘어간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과 한 줌의 똥을 찾아 온종일 찬바람 속에서 산양의 뒤를 쫓는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땅거미가 지면 스산한 바람이 일고 하루를 묵어갈 바위굴을 찾아 기어든다. 칠흑 같은 굴속에 웅크리고 누워 날이 새지 않을 것처럼 느리게 지나가는 겨울밤을 견딘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눈을 뜨면 검푸른 하늘엔 반짝이는 별들로 빼곡하다. 산양도 저 별을 바라보고 있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졸음에 겨워 스르르 잠이 들면 한 마리 산양이 돼 설악산을 누비는 꿈을 꾼다.

침낭 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뿌리치는 새벽, 뿌옇게 하늘이 열리고 차츰 짙어지는 붉은 기운이 퍼진다. 힘들게 견뎌낸 긴 시간이 멈추고 해 뜨기 직전 추위는 뼈 속으로 파고 들어 침낭을 빠져나오는 것조차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루를 묵었던 굴을 기어 나오면 가슴 속으로 차갑게 들어오는 아침의 싸한 바람 속에 오늘 만나게 될지도 모를 산양을 그리며 설렌다. 파고드는 추위에 고슴도치처럼 몸을 말고 견뎌낸 긴긴 밤이 푸른 별 지구에서 뭇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밤이었음을 깨닫곤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뭇 생명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고 잠깐 서로의 삶이 스쳐가는 존재임에도 사람만이 두드러진 것처럼 살아가고 있음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사람이라는 이유로 특권처럼 누리는 자연에 대한 폭력을 멈추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새벽을 기다리는 것은 이다음 아이들이 겪어야 할 아픔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려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새벽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며 삶을 결정하는 존재인 자연의 보복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이들의 일이면서 모든 이들이 무관심한 일로 우리는 푸른 별 지구에서 영원히 추방될지도 모른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 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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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1-1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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