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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청소년 문학·인권 돌아보는 계기 됐으면”

한국 첫 린드그렌상 수상자 백희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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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은 백희나 작가는“제 그림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하면 좋겠다”고 했다. 책읽는곰 제공



“제가 좀 많이 힘들었어요. 작가이자 인간으로서 걸어온 길에서 마지막 절망의 순간이었는데…. 앞으로 나아갈 길의 등대를 밝혀준 느낌이 들어서 ‘하느님이 나를 생각해주시는구나!’ 했죠. 정말 받고 싶었던 상이었어요. 제가 정말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게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다시 일어나야죠. 큰 용기를 주셨잖아요.”

「구름빵」,「알사탕」 등으로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그림책 작가 백희나(힐다, 49)씨가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올해 67개국에서 240명이 후보로 올랐고, 한국인 작가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이 상은 ‘삐삐 롱스타킹’을 쓴 스웨덴의 유명 작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스웨덴 정부가 2002년에 제정했다. 상금은 스웨덴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다. 상금은 500만 크로나, 우리 돈으로 6억 원이 넘는다.

해외에 체류 중인 백 작가는 전화 인터뷰로 수상 소감을 묻자, 긴 숨을 내뱉었다. 바닥의 늪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던 그에게 하느님이 숨통을 허락한 듯했다. 그는 기쁘다는 말보다 안도의 숨을 먼저 내쉬었다. 수상 소식은 부활의 기쁜 소식으로 날아왔다.

“사실 작업을 다시는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생존이 목표였어요. 제게 신앙이 없었다면, 극단적인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작가로서 바닥이라고 느꼈어요.”

그는 「장수탕 선녀님」,「이상한 손님」,「달 샤베트」등 13권의 그림책을 출간했다. 직접 공들여 만든 피규어와 다양한 빛의 조명, 사진을 배경으로 영화 같은 그림책들을 만들어왔다. 심사위원단은 “그녀의 작품은 경이로움으로 통하는 문이며, 감각적이며 아찔하고 예리하다”고 평했다. 무엇보다 그가 많은 소품을 통해 동화책 무대에 올리는 이야기들은 존재의 쓸쓸함과 나약함을 바탕으로 인간·동물의 고독과 연대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같이 주인공들은 나와 다른 타인을 돕고 싶어 하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한다. 서로 사랑하고 싶어한다.

16년간 그를 고통스럽게 한 작품은 데뷔작 「구름빵」(2004)이었다. 고양이 남매가 두둥실 날아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아빠에게 구름빵을 갖다 주는 내용이다. 구름빵은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제작됐다. 그러나 출판사와 저작권을 일괄 양도하는 매절계약을 맺은 백 작가에게 구름빵의 흥행은 말 그대로 남의 잔치였다. 내용까지 변형됐다. 그는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냈고 1, 2심 모두 패소했다.

지난해 봄, 1심 판결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개다」(책읽는곰)를 출간했다.

“강아지들은 태어나자마자 입양되거나 버려지기도 하는데 다 받아들이며 살더라고요. 비관하고 화풀이하고 자살하는 개는 없더라고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아요. 이 작업을 하면서 견딜 수가 있었어요. 하느님이 도와주신 거죠.”

백 작가는 “신심이 깊지 못해 남의 인생을 도와주는 것까지는 못하지만 힘들 때마다 ‘주님의 종이오니, 내게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해왔다”고 털어놨다.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아 유아 세례를 받은 백 작가는 “그림책 작업을 하는데 신앙이 가장 기본적인 뿌리로 차지하고 있고, 그 뿌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이라는 믿음”이라고 했다.

“제 그림책이 교훈이나 메시지를 주지는 않아요. 읽는 사람이 행복하면 좋겠어요. 힘든 삶에 위로가 되고 기분이 좋아져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힘든 인생을 살 때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체험이잖아요.”

그는 전화를 끊기 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n번방을 언급했다.

“아동 성 영상물을 제작한 이들이 크게 벌을 받지 않는 것이 법 체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법 이전에 문화의 문제에요. 아동 청소년의 인권이 이렇게 보잘것없다는 거죠. 스웨덴 국민의 세금으로 우리나라 작가에게 상을 줬다는 것은 돌아봐야 해요. 제가 드러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아동 청소년 문학의 위치, 앞서 아동 청소년의 인권이 어떤 수준인지 뼈아프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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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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