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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고통 속에서 피워낸 숭고한 사랑

전쟁과 사랑 / 엔도 슈사쿠 지음ㆍ김승철 옮김 /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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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일본 문단의 거장이자, 가톨릭 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엔도 슈사쿠(바오로, 1923~1996)의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이 국내에 출간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쟁의 비극과 모순 속에서 신의 사랑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그렸다. 이 작품은 1980년 11월부터 1982년 2월까지 약 1년 3개월간 아사히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의 제2부다. 「전쟁과 사랑」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자란 사치코와 슈헤이, 이곳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를 두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치코와 슈헤이는 나가사키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다. 남매처럼 친하게 지낸 두 사람은 성장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사치코를 사랑하는 슈헤이는 학생임에도 군대에 강제 징집되자 사치코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사치코는 매일 미사에 참여하면서 슈헤이를 위해 기도하는데….
 

강제 징집된 슈헤이는 ‘살인하지 말라’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의 현실에서 고뇌한다. 사치코는 자신이 사랑하는 슈헤이가 전쟁에서 목숨을 잃지 않기를 매일 기도한다. 번민으로 가득했던 슈헤이는 전쟁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자살 특공대에 지원해 전사하게 된다. 결국, 이들이 살던 나가사키는 원자폭탄으로 잿더미가 된다.
 

이야기의 또 다른 한 축에는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가 등장한다. 막시밀리안 콜베(1894~1941) 신부는 실존 인물로, 1930년에 배를 타고 나가사키에 도착해 선교 활동을 펼치지만, 폴란드로 돌아간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생존이 최고 목표인 잔혹한 아우슈비츠에서 콜베 신부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비난을 퍼붓고, 그가 곤란한 상황에 부닥쳐도 따뜻한 눈길 한번을 주지 않는다.
 

여기서 눈에 띄는 인물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헤스 소장과 마르틴 부소장, 뮐러 장교다. 헤스와 마르틴은 두 개의 인격을 지니고 산다. 집에서는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이지만, 수용소에서는 시체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밥을 떠먹는 인물로 묘사한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다른 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불편하다. 뮐러 장교는 자신이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권력을 가졌다는 것에 만족한다.
 

콜베 신부는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이를 대신해 죽기를 자청한다. 그런데 콜베 신부가 처형장으로 끌려간 후 주변 사람들에게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그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마다 냉소적이었던 이들이 달라진 것이다. 자신의 빵을 영양실조에 걸린 동료와 나누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중 인격자였던 마르틴 소장은 콜베 신부를 생각하며 전쟁과 사람,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은 이전과 다르게 사망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도를 바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그리스도인들을 감시와 모멸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리스도교를 적국의 종교라며, 그리스도인들을 비국민(非國民)이라고 불렀다. 소설은 전쟁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는 일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도 비친다. 엔도 슈사쿠는 사치코와 슈헤이의 사랑, 타인을 위해 대신 목숨을 바친 콜베 신부의 숭고한 사랑을 통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조명했다. 전쟁 속에서 신앙을 품고, 현실에서 번민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극한 전쟁과 고뇌에도 사랑을 실천하는 인간을 그렸다.
 

도쿄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권유로 10살 때 세례를 받은 엔도 슈사쿠는 프랑스 리옹대학에서 현대 프랑스 가톨릭 문학을 공부했다. 1971년 교황청에서 기사 훈장을 받았다. 17세기 일본의 가톨릭 탄압을 소재로 삼은 「침묵」이 그의 대표작으로, 13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오른 인물이다.
 

옮긴이 김승철(일본 난잔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는 신학박사로, 2013년부터 일본에서 ‘엔도 슈사쿠를 읽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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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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