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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40) 체코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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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창연한 프라하는 매력적인 도시로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또한 프라하 성처럼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은다. 성의 주인은 세월 속에 수없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이 성은 블타바(Vltava) 강 서쪽 언덕 위에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중세시대의 성이다.

성 안의 건물 중에서 아주 유명한 것이 ‘성 비투스(Saint Vitus) 대성당’이다. 우뚝 솟은 성당은 프라하 성의 중앙에 위치하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프라하의 주교좌성당이면서 체코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이 성당의 길이는 124m, 폭은 60m, 종탑은 96.5m에 이른다.

원래 이곳에는 930년경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있었다. 신성 로마 제국으로부터 받은 초대교회 순교자 성 비투스의 유해를 보관하기 위해 성당을 건축했지만 후에 낡고 좁아 허물어버렸다. 1344년 카를 4세 때 프랑스 출신의 마티아 오브 아라(Matthias of Arras·1290경~1352년)의 설계로 새 성당의 공사가 시작됐다. 그의 사후에는 페테르 파를러(Peter Parler·1333~1399년)가 추가로 설계해 공사를 진행했으며, 그의 아들과 여러 건축가들이 성당 건립에 헌신했다.

그러나 프라하의 다리 공사와 다른 성당 건축, 얀 후스(Jan Hus·1372~1415년)의 종교개혁 때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1541년에 발생한 대화재와 재정난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585년이 흐른 1929년에 성당은 비로소 완성됐다. 오랫동안 공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비투스 성당에서는 다양한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거대한 성당의 외관은 고딕이지만 곳곳에서 후기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와 신 고딕 양식도 만날 수 있다. 성당 건축 뿐 아니라 내부를 장식한 다양한 성물과 유리화를 통해서도 성당의 장구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성당의 남쪽 출입문은 ‘황금문’으로 불리는데, 입구 위 벽면에 ‘최후 심판’ 모습이 황금색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성당을 드나들 때 이 그림을 보면서 자신이 맞이할 최후 심판을 생각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황금문은 대관식 행사 등이 있을 때 각국의 왕들이 드나들던 문이었는데 오늘날에는 성당을 찾는 사람들의 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당 안에는 체코에서 존경받는 성인 얀 네포무츠키(St. Jan Nepomuc ky·1340~1393년)의 무덤이 있다. 성인의 유해는 은으로 만든 화려한 관 안에 잘 모셔져 있다. 성인은 궁정 사제였는데 불륜의 의심을 받던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는 왕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온갖 고문을 당한 끝에 순교했고 시신은 블타바 강에 던져졌지만, 후에 성인이 되어 공경 받게 됐다. 또한 성당과 지하에는 카를 4세를 비롯한 왕들과 주교들의 무덤이 있으며 2011년에 개관한 성당 외부의 보물실에는 진귀한 교회의 유물이 잘 전시돼 있다.

특히 비투스 성당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제작된 아름다운 유리화로 유명하다. 성당에서는 전통적인 유리화부터 아르누보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의 유리화를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알폰스 마리아 무하(Alfons Maria Mucha·1860~1939년)의 작품이다. 체코 출신의 아르 누보 화가인 그는 포스터를 비롯해서 많은 장식 미술을 남겼다.

성당 북쪽 창문에 있는 무하의 유리화는 ‘성 치릴로와 메토디오’(St. Cyrillus et Methodius)이다. 두 성인들은 형제로서, 유럽 동남부의 슬라브 민족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로 불린다. 작가는 슬라브인에게 복음을 전한 두 성인들의 선교와 사랑을 아름다운 선과 장식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느낌을 갖게 해준다. 성당이 완공되기 직전에 독특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유리화는 오늘날 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다양한 유리화를 통해서 들어오는 빛은 성당 내부의 기둥 다발을 비추며 성당을 성스러운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대부분의 유럽 성당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서 건립됐다. 그 가운데서도 성 비투스 성당의 건축기간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이 성당은 내·외부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600여 년 동안 건축된 성당으로도 유명하다. 수많은 사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비투스 성당의 수명은 수백 년을 넘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성 비투스 대성당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성당 건축 기간은 십 년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참으로 짧다. 성당의 건축 기간이 짧다보니 세심히 계획하고 점검하며 보완해야 할 것을 놓치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때로는 참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성당을 지을 때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건물과 함께 그 안을 장식할 성물도 한꺼번에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성당 건축의 시간과 재정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모든 것을 다 갖추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성당의 전례에 필수적인 성물만 먼저 갖추고 유리화나 성화같은 것은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천천히 채워도 될 것이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성당이나 성물은 언제나 충분한 시간 속에서 수많은 사람의 정성과 기도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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