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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여는 문 '이콘'] 라도네츠의 성 세르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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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네츠의 성 세르게이는 겸허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철저한 가난의 삶을 살며 복음을 실천한 러시아의 스승이다. 또 14세기 타타르족(몽고족)의 침입으로 어려웠던 시대에 침략자들로부터 조국과 민족을 해방시키고, 황폐해진 러시아를 새로 일으켜 제후들의 통합과 일치를 촉구하며 러시아의 일치에 큰 역할을 한 러시아 최대 성인 중 하나다.

성 세르게이는 1314년 5월 3일 로스토프의 귀족 보야르 키릴과 마리아의 아들로 출생해 바르톨로메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성사 주례자 미하일 신부는 그 부모에게 “이 아기는 거룩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일꾼으로 선택받았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 예언은 후일 적중됐다.

그는 일곱 살이 되자 수도원에서 읽는 것과 쓰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글을 읽는 것은 더디기만 했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더 좋아했다. 15세 되던 해, 그의 부모는 정치 문제로 추방돼 로스토프에서 남쪽으로 160㎞ 떨어진 라도네츠라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에 정착했다.

그는 수도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함께 살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뜻에 순명하며 6년간 모셨다. 그 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20세의 나이에 부인과 사별한 형 스테파노와 함께 코트코보의 수도원에 입회해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은둔 생활을 하며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허락을 얻어 라도네츠에서 15㎞ 떨어진 숲속으로 형과 함께 들어가 기도와 성경 독서를 하고, 숲을 개간하며 엄격한 수도 생활을 했다.

숲 속 은수(隱修) 생활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늑대, 곰 등 야수의 위협과 추위, 특히 겨울철 식량조달이 너무나 어려웠다. 결국 형은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모스크바의 에피파니아 수도원으로 옮겨갔으나, 바르톨로메오는 홀로 숲 속에서 은수 수행을 계속하면서 침묵과 기도 중에 수도 서원을 준비하고 23세가 되던 1337년 성 순교자 세르게이 축일에 ‘세르게이’라는 수도명으로 정식 허원했다. 이후로도 계속 홀로 고독에 머물며 기도했고, 악마들의 온갖 유혹을 받았지만 주님은 밝은 빛의 환시로 위로를 주셨다. 어느 날에는 성모님께서 친히 베드로·요한 사도와 함께 나타나 위로해 주셨다. 그의 이러한 금욕적이고 거룩한 생활은 널리 알려져, 생활을 본받고자 많은 이들이 그에게 몰려왔다. 그는 조용히 은수자로 살고 싶었으나 이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깨닫고 그들을 받아들여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이 현재 모스크바 북쪽에 위치한 ‘성 세르게이 삼위일체 대수도원’이다.

러시아정교회는 1422년 7월 5일 노브고로드에서 그를 시성했다. 이후 성 세르게이를 주보로 모신 성당이 각지에 세워졌고, 그가 세운 수도원도 더욱 번성해 여러 분원들로 확장됐다.


장긍선 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 과정 등을 수학한 후 디플로마를 취득, 이콘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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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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