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경험이 시인을 만든다
▲ 영화 ‘일 포스티노’ 포스터. |
▲ 치바이스 작 ‘와성십리출산천(蛙聲十里出山泉)’. |
2017년 재개봉한 영화 ‘일 포스티노’는 잔잔한 시적 감성을 부르는 이탈리아
영화다. 영화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동명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화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칠레의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를 소재로 했다.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 영화 속 임시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시인의
눈을 갖게 된다. 이탈리아의 작은 섬 칼라 디소토.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되기 싫었던
마리오는 극장에서 네루다가 이 작은 섬으로 망명 온다는 뉴스를 접한다. 섬을 통틀어
단 한 명. 네루다만의 우편배달부를 뽑는다는 소식에 그는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우편배달부가 된다. 마리오는 네루다의 시집에 서명을 받고 싶어, 시집을 준비해
배달 가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다.
시집은 알 수 없는 말뿐이었다. 마리오가 그럼에도 시집으로 그와의 친분을 과시하려
한 것은 선술집 아가씨 베아트리체 루소 때문. 그는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얻기 위해
네루다의 시를 도용해 연애편지를 쓴다. 그러다 베아트리체의 숙모에게 발각돼 결국
네루다의 집에 숨는다. 전후 사정을 알고 난 네루다는 마리오가 베아트리체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얼마 후 수배령이 취소된 네루다는 부인과 함께 고향 칠레로 돌아간다.
5년 후, 네루다는 작은 섬 칼라 디소토에 다시 들른다. 네루다는 고인이 된 마리오가 녹음기에 남긴 소리와 마주한다. “이 섬의 아름다움이 뭐냐”고 물었던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녹음기에는 바다의 작은 파도, 큰 파도, 절벽의 바람 소리,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신부가 치는 교회의 종소리,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아내 배 속에 있는 아들의 심장 소리가 녹음돼있다. 마리오는 고백한다. 자신은 네루다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인의 눈을 가지게 됐음을 고백한다.
시(詩)가 무엇이길래 사람을 변화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하는가. 중국 인민예술가
치바이스(1860~1957)의 시의(詩意) 그림은 몸소 경험하라고 말한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나 소목장이 됐지만 그림과 시를 배우며 문인들과 교류를 통해 시적 정취가 넘치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91세에 그린 ‘와성십리출산천(蛙聲十里出山泉)’은 중국의 대문호 라오서(1899~1966)가
주문한 그림이다. 라오서는 편지에서 청나라 사신행(1650~1727)의 시구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은 주변 10리 안에 반드시 산속의 샘물이 나온다’를 적고 그
옆에 주필로 ‘올챙이 4, 5마리가 물을 따라 꼬리를 흔들고, 개구리는 없으나 울음소리가
상상이 되어야 한다’고 썼다. 이 작품은 라오서의 구체적인 요구에 맞게 그린 것으로
두 대가가 협업한 작품이기도 하다.
치바이스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그렸는데, 그는 마음속에서 시를 얻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했다. 영화 속 네루다도 마리오에게 말한다.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