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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미술관 ‘인체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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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조각작품에 직접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은 우리들로 하여금 조각을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게 하며 동시에 우리들은 상상 속에서 조각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각의 표면은 우리들의 실제에 있어 살아있는 물체에 닿을 때 향수하는 바의 그러한 쾌감을 상상 위에서 느낄 수 있도록 조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조각 예술의 비밀이 있다.’ (김종영, 연구논문 ‘한국 원산 재료를 주로 한 조각작품 연구’(1972) 연구개요 중에서)



조각가이자 화가인 고(故) 김종영(프란치스코·1915~1982) 선생의 생애와 작품을 보면 그는 ‘예술가’를 넘어 ‘철학자’에 비견될 만하다.

그는 깎는 것이 업(業)인 조각가임에도, 깎지 않는 ‘불각(不刻)의 미’와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또한 그의 작품을 보면 가족과 사람, 자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묻어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선생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적은 수를 차지하는 인체 조각 작품들을 모은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의 인체 조각’전이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는 두 가지다.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 선생에게 인체는 어떤 의미를 지닌 모티브였는지, 그리고 선생의 인체 조각과 추상 조각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종영미술관 박춘호(토마스) 학예실장은 “김종영 선생의 조각작품 모티브는 인체에서 출발해 식물, 산과 같이 자연으로 확대됐는데 이는 선비의 자연관과 학문하는 태도와 직결된다”며 “조각가로서는 매우 역설적인 결론인 ‘불각의 미’에 도달하게 된 출발점 또한 인체였다”고 평했다.

선생은 생전에 작품 제목을 그냥 ‘작품’이라 하고 제작 연도와 순서를 차례로 표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관객이 선입견을 갖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하며 작품을 감상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품 81-4’는 1981년에 제작한 4번째 작품이라는 뜻인데, 환조와 부조가 어우러진 독특한 이 작품을 보면 인체 두상 또는 군상 같기도 하며, 십자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그는 버려진 재료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다듬이 방망이로 만든 대표작 ‘새’를 출품한 것을 시작으로, ‘자각상’(1964)은 1962년 남대문 보수공사로 생긴 폐목으로 제작했다.

그림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1958년 작품인 자화상과 둘째 아들 그림은 모두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던 서울대 미술대학 교내 미전 초대장 뒷면에 그렸다.

김종영미술관 본관에서는 선생의 인체 조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개됐는지 변화를 개괄할 수 있도록 소재와 시기별로 구별해 전시가 이뤄지고, 신관 전시에서는 작품 외에도 인체에서 출발한 작품의 추상화(抽象化)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알 수 있도록 선생이 육필로 쓴 예술노트와 스케치북 등도 함께 소개한다.

전시는 6월 7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다. 무료 관람.

※문의 02-3217-6484 김종영미술관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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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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