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생명/생활/문화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영화의 향기 with CaFF] (31)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8)

1994년 시대의 아픔과 소녀의 일상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영화 벌새 스틸컷.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13)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벌새’는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25개의 상을 받은 작품으로, 1994년 14살 소녀 은희의 평범한 일상 가운데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통하여 개인적 관계가 시대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왜 1994년일까?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을 견뎌야 했고,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 성수대교 붕괴 사고까지…. 유난히도 사건 사고가 잦았던 해였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졌던 그해의 기억이 은희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사실 주인공 은희가 바랐던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지만, 안타깝게도 가족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남자 친구나 후배에게서도 은희는 관계의 단절을 체험한다. 다행히 단 한 사람, 엉뚱해 보이는 한문학원 영지 선생님만이 은희의 마음을 알아주고, 진정한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지만, 기쁨도 잠시 선생님마저 갑자기 학원을 그만두게 되고, 그 헤어짐이 시대의 비극과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은희가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욕구에 해당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 마음 안에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내적 갈망을 심어놓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그 빈자리를 부와 명예 같은 세상의 것으로 대신 채워보지만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로지 진정한 사랑을 할 때 비로소 공허함 대신 내적 충만함을 체험하게 된다.
 

신앙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 사랑을 통한 영적인 기쁨과 평화를 스스로 체험하는 삶이고, 그 기쁨과 평화를 가족과 이웃에게 나누며 사는 삶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앙을 증언하고, 전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나의 삶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온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세상의 물질적 가치에 자유로우며,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가족과 이웃과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사랑의 희망을 퍼뜨리게 된다.
 

시대의 아픔 앞에서 모든 관계가 어긋나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참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때 복음적 가치는 ‘둘이나 셋이 모인 곳 주님 계시네’라는 성가의 가사처럼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나와 너를 넘어 우리가 공유하는 긍정적 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월 29일 개봉

▲ 조용준 신부(성바오로 수도회 가톨릭영화제 집행위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8-2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4

시편 115장 1절
주님, 저희에게가 아니라 저희에게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당신의 자애와 당신의 진실 때문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