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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47) 미안해요, 리키

택배 기사의 고된 일상과 가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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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 12,15)

켄 로치 감독의 새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영국에서 살고 있는 리키와 애비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택배 기사로 일하는 리키와 가정 방문 복지사 일을 하는 애비는 늘 바쁘게 살지만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맞벌이 부부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늦은 밤과 주말까지 일을 해야만 한다.

전화로만 자녀들을 챙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들 세브는 부모의 기대를 벗어나 공부 대신 그래피티(낙서)에 빠져 살고 있고, 딸 라이자는 삶에 지쳐있는 부모와 방황하는 오빠 사이에서 불안과 우울함을 이겨내지 못한다. 일에 치여 집에 늦게 돌아온 리키와 애비는 피곤함에 자녀들과 제대로 된 식사나 속 깊은 대화를 할 여유 있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고, 라이자의 소원인 화목했던 가정의 회복 대신 점점 그 관계는 소원해진다.

켄 로치 감독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영국에서 긱 이코노미(정규직보다 단기 계약직이나 임시직을 일시적으로 채용하는 것)와 제로아워 계약(최소한의 근무시간과 조건을 정해놓지 않고 일한 시간만큼의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으로 노동의 질이 한없이 추락하는 현실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 중반 강도를 당해 병원에서 검사를 기다리는 리키에게 택배 관리소장은 택배 물품의 안전과 차질 없는 배송을 책임지라고 하고, 이때 아내 애비는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던 욕을 하며 “내 가족이에요. 내 가족 괴롭히지 마”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다. 다친 리키가 제대로 된 검사와 치료를 받고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일하고 있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장면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IT 기술의 황금시대에 기술로 말미암아 삶의 질이 향상되고, 여유 있는 삶이 허락되기보다 실제로는 기계적인 효율성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비인간적인 환경이 우리를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지난여름 8월 16일을 ‘택배 없는 날’로 만들어 달라는 택배 기사들의 제안이 있었다. 짧은 휴가조차 보낼 수 없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특별한 여름휴가를 주기 위해 하루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 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그날 얼마나 많은 택배 노동자가 쉴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의 행복 추구를 위한 지지보다 배송이 늦어지는 불편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가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는 씁쓸한 반증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군중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던 것처럼, 모든 이들의 삶과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함께 고민해 보자.

12월 19일 개봉

▲ 조용준 신부(성바오로 수도회 가톨릭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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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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