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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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70) 바다로 가자

북한, 무서운 땅이 아닌 그리움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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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다로 가자’ 포스터.


어린 시절 6월이 되면 우리는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 머리에 뿔이 난 붉은 사람들 위에 아이의 시선을 넘는 표어를 적어 넣었다. 북한은 무서운 땅이었다.
 

이 영화는 실향민인 김주영님의 고향으로 향하는 절절한 시선에 딸 김량 감독이 질문을 던지며 이어지는 다큐멘터리다.
 

“왜 그렇게 고향이 그리운데?” “사람이니까 그러지….”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두고, 곧 오겠다고 떠나온 지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떻게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을까. 자녀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잘 웃지 않으셨다. 아들은 아버지를 가장 슬픈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남한에서 결혼하여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은 아버지는 자녀들이 대견하면서도 자신과 같은 삼 남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두고 온 동생들 생각에 슬픔이 인다. 삼 남매를 앉혀놓고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와 그 노래를 듣는 삼 남매의 모습이 노래만큼이나 애잔하다. 현실을 누리지 못하고 자꾸 어딘가로 향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실향민 2세들의 당황스러움…. 어떤 소통이 그 자리에 있을까?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북한은 그리워할 수 없는 땅이었다. 이 아버지의 심정은 500만 실향민들의 고통이었고 그 가족들의 고통이었다. 우리는 왜 우리가 그런 고통을 겪는지도 잘 모르면서 그저 견디었다.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해결하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 용감한 어른들도 있지만 여린 어른들은 이 아버지처럼 삶에 담긴 기쁨의 감각을 잃어버린다.
 

영화는 영화를 바라보는 나의 세계도 건드렸다. 전쟁 중에 폭격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가 슬퍼하며 우는 모습이 힘들었다. 15년도 지난 일인데…. 어른이 되어 보니 15년도 어제 같은데, 그때는 그런 이해가 없었다.
 

만일, 좀 더 빨리 깨달은 이들에 의해서 사회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이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이 함께 아버지의 심정이 되어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를 부를 수 있었다면, 아버지는 덜 외롭지 않았을까. 바로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고, 당황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슬픈 것이라고 이해했다면.
 

영화 속에는 김주영 어르신의 고향 분들도 나온다. 실향민 2세들과 3세들의 시각도 담겼다. 한 어르신은 눈물이 나도 자녀들 앞에서는 참았다가 혼자 있을 때 운다고 했다. 집단 체험이기에 헤아려지기보다는 오히려 억압되고, 무심히 치부되어 온 것이다.
 

감독은 아버지의 사례를 통해 이 땅의 문제를 표면화시켰다. 가족사이기에 스스럼없이 이어지며 상황에 몰입시킨다. 실향민 어르신들과 그 자녀들이 함께 보며 서로를 다독이면 좋겠다. 북한은 무서운 땅이 아니고 부모의 고향이고 그리움의 땅이었다.


▲ 손옥경 수녀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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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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