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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80) 에델과 어니스트

평범한 부부의 삶에 담긴 시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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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가득한 창가에서 한 할아버지가 머그잔에 우유와 홍차를 따른다. 느릿느릿 머그잔을 입가로 가져가는 모습이 몸에 밴 듯 평화롭다. 그림책에 관심이 있다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 같은 그 할아버지는 「눈사람 아저씨」, 「산타 할아버지」, 「곰」, 「바람이 불 때에」로 잘 알려진 영국의 그림책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1934~ )이다. 이번에는 그의 그림책을 원작으로 한 로저 메인우드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에델과 어니스트’를 소개한다.

“우리 부모님은 지극히 평범한 분이셨어요. 극적인 일도 없었고 이혼도 안 하셨지요. 하지만 난 부모님을 그림책을 통해 기억하고 싶었어요.”

애니메이션의 서두에 레이먼드 브릭스가 소개하듯 ‘에델과 어니스트’는 그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부모님이 주인공이다. 아버지 어니스트(1900~1971)는 평생을 우유 배달원으로 살았고, 어머니 에델(1895~1971)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둘은 우연히 길에서 만나 결혼에 이른다.

우유 배달원의 월급으로 25년간 갚아야 하는 아담한 집을 얻고 고대하던 아들이 태어나고 살림도 하나둘 늘어갈 즈음, 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한다. 엄청난 파괴와 사상자를 낸 전쟁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가족은 다시 무너진 집을 보수하고, 우유 배달원으로 삶을 이어간다. 전쟁의 상흔도 아물어 갈 즈음, 대학에 진학해서 사무직을 얻길 고대했던 아들 레이먼드는 미술학교로 진학하고, 아들이 데려온 미래의 며느리는 조현병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말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다시 둘만 남은 쓸쓸한 집에서 같은 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렇게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 어떻게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으로 세상에 나온 걸까 궁금해진다. 이 작품은 문명의 발전, 정치, 사회, 경제 등 커다란 역사의 씨줄과 결혼, 자녀 양육, 죽음이라는 개인 삶의 날줄을 한 부부의 삶을 통해 들여다보게 한다. “축구 영웅담, 요리책 같은 베스트셀러 옆에 우리 부모님에 관한 책이 있다니 기분이 묘하네요”라는 그의 말에서 ‘평범한 삶’의 가치에는 소홀하면서 화려한 것만 좇고 있는 세상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본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그림책을 보면 인물 표정에는 풍부한 감정을 담아내고, 건축과 공간 안의 소품들에 대한 묘사는 동화 속 주인공들의 일상이 되살아 날 만큼 심혈을 기울인다. 이 애니메이션도 그런 그의 스타일을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하였다. 마지막에 아들 레이먼드가 세상을 떠난 부모의 집을 비우며 부부의 결혼사진을 떼어낸 침실 벽에는 하얀 흔적만 남았다. 영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작곡가 겸 지휘자 칼 데이비스가 맡은 영화음악과 함께 그 장면이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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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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