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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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잃었던 행복을 되찾은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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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중 제24주일입니다. 교회는 광야에서 잃었던 한 마리 양과 집안에서 잃었던 은전 한 닢을 되찾은 기쁨에 함께합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올 때 하늘의 천사가 더 기뻐합니다. 되찾은 아들을 따뜻이 맞아주고 화해의 잔치를 여는 아버지의 집은 자비와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제1독서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계약의 판(율법)을 받기 위해 40일간 단식기도를 하고 있는 동안 산기슭에서 벌어지는 금송아지 사건을 전합니다. 백성들은 아론에게 앞장서서 그들을 이끌 가시적인 신을 만들어 달라 요구(탈출 32,1)합니다. 그들은 계명을 어기고 모은 금붙이로 풀을 뜯는 송아지 상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지냅니다.

목이 뻣뻣한 백성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진노하신 하느님께 중재 기도(탈출 32,11 이하)를 합니다.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내신 당신의 백성이고, 광야에서 그들이 몰살한다면 주님의 구원능력에 불신이 생기며,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과 약속의 땅을 상속재산으로 주시겠다는 성조들과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간청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주님께 드리는 감사인사(1티모 1,12)는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개종하기 전 한때 그는 예수님께 대한 적대감정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가두고 하느님의 교회를 없애려고 박해했던 인물입니다.(사도 26,9-11)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회심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릇으로 선택하십니다.(사도 9,15)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세상의 죄인 가운데 ‘첫째가는 죄인’(1티모 1,15)이라 고백합니다. 교회를 없애버리려고 그리스도를 박해했던 그는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1코린 15,9)임을 압니다. 무한한 인내로 대해주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한 그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하려 이 세상에 오신 강생의 목적을 밝힙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된 그는 이민족의 사도로 일하면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바칩니다.

오늘 복음(루카 15,1-32)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인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눕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율법의 정신을 망각한 채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기에 죄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반대의 표적이 됩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세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백 마리의 양을 가진 사람이 그 중 한 마리를 광야에서 잃으면 그를 뒤쫓아가 찾은 뒤 어깨에 메고 돌아와 공동체와 함께 기뻐합니다. 무리를 떠난 한 마리 양도 공동체에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여인이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온 은전 열 닢 가운데 한 닢을 집안에서 잃으면 등불을 켜고 샅샅이 뒤져 찾아내 이웃과 함께 기뻐합니다. 이처럼 “하늘나라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합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 말씀(루카 15,11-32)은 나만의 행복을 위해 아버지의 집을 떠난 작은아들과 아버지와 함께한 큰아들의 모습은 바리사이들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자기 몫의 유산을 챙기는 작은아들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태도입니다. 그는 방종한 생활로 재산을 잃은 뒤, 지중해 문화에서 가장 천한 직업인 돼지치기로도 연명이 어려워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곳에는 일용할 양식이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는 그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습니다.

큰아들 또한 되찾은 아들입니다. 그는 동생이 자기 몫을 챙기는데도 태만했고, 돌아온 아우를 위한 잔치도 거부했습니다. 아버지 호칭 대신 ‘보시오’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지적한 그는 공동체 앞에 아버지를 모욕하고, 동생은 매춘부와 놀아났다고 모함합니다.

두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용서와 사랑입니다. 잃었던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달려가 품에 안습니다. 아들의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은 채,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손에 가문의 명예인 반지를 끼웁니다. 공동체와 관계회복을 위해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풉니다. 화를 내는 큰아들의 모욕적인 언행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연민의 정을 보입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현세는 ‘우상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돼 돈과 권력과 명예가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상들이 사람의 마음을 산란케 합니다. 모세의 기도가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삼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과 화해시켰다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인 성찬례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형제적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는 감사제사입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삶은 내적 태도입니다. 그 관계는 사랑의 끈이고 내적 태도는 마음가짐입니다. 되찾은 양 한 마리와 되찾은 은전 한 닢을 두고도 함께 기뻐합니다. 작은아들처럼 나만의 행복은 고통이고, 큰아들처럼 아버지를 외면하는 모습은 태만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이 나의 행복이고, 이웃의 행복이 나의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심장인 미사에서 마음의 회개로 잃었던 행복을 되찾은 오늘은 잔칫날입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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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9-0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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