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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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감사하는 삶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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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중 제28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병 환자의 치유를 통해 모든 민족의 눈앞에 구원의 표징을 드러내십니다. 굳센 믿음이 생명을 구하고, 은총에 감사하는 삶이 구원의 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랑의 삶(1테살 5,16-18)을 살아갈 수 있게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성서학자와 의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세기 전에는 팔레스타인에 현대적인 한센병은 없었다고 합니다. 구약에 기록된 나병(leprosy)이란 용어는 히브리어(ara’at)를 그리스어(lepra)로 번역하는 과정에 등장합니다. 원래 의미는 발진이나 습진 같은 악성 피부병과 집에 생기는 얼룩을 두고 한 말입니다.(가톨릭 사전, concordance)

구약에 나병으로 기록된 사례는 모세의 손에 드러낸 사명의 표징, 시리아인 나아만, 우찌야 왕의 경우를 포함해 극소수(탈출 4,6; 2열왕 5,1; 2역대 26,21; 2열왕 5,27. 7,3)에 불과합니다. 신앙의 조상들은 정결법(레위 13-14장)을 통해 악성 피부병 환자와 경계를 두어 신앙공동체를 거룩하고 안전하게 보호했습니다. 피부병 환자의 증세와 경과를 자세히 살펴보는 일은 사제의 몫입니다. 부정한 환자는 공동체에서 격리됩니다. 그가 깨끗하게 되어 정결례를 치를 때 성전에 속죄 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은 의무입니다.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 시대(기원전 9세기)에 강국이었던 시리아의 나아만 장수는 이스라엘의 예언자가 말한 대로 요르단강물에 일곱 번 몸을 담갔더니 어린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습니다. 수행원을 거느린 그가 엘리사 앞에 겸손한 종이 되어 이스라엘의 하느님만이 유일신이라는 신앙고백을 하고 감사의 선물을 바칩니다.(2열왕 5,15)

엘리사가 선물을 단호히 거절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주님만을 섬기고자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 성지의 흙을 청하는 그의 신심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았는데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하신 주님 말씀(루카 4,27)이 연상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2티모 2,8)라는 그의 좌우명을 선포합니다. 회개한 이후 그는 주님만을 기억하며 살았고, 복음을 위해 감옥살이하는 고통을 겪다가 순교한 사도입니다. 그는 초기 교회공동체가 시편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성자를 통하여 이루신 놀라운 사건, 곧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주제로 한 찬미가의 일부(2티모 2,11-13)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희망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합니다.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감사할 일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경계를 지나실 때 일입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찾아와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루카 17,13) 하고 청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스승님)께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마태 8,2; 마르 1,42; 루카 5,12)임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길을 가는 동안에 깨끗해집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하느님만이 치유하시는 분이고 예수님은 은총의 중개자였습니다. 시리아인 나아만과 사마리아인의 나병 치유는 구원의 은총에 모든 민족이 초대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지중해 문화에서 ‘자비’는 대인관계에서 각자의 소임을 다하도록 동기부여를 시켜주는 은총입니다. 자비하신 예수님께서는 정결법의 경계로 소외된 그들을 치유하시어 믿음을 심화시키고 공동체에 생활권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치유 받은 열 명 중 외국인 사마리아인만이 찬양하며 돌아와 주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다른 아홉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희생제물을 들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간 것일까요? 주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본받고 있습니까? 엘리사는 감사의 선물도 거절했습니다. 나아만은 주님 외에 어떤 신에게도 제물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이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사람을 위한 선물과 우상에게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증인이 된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일을 원하십니다.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는 충만한 사랑의 선물을 받아 누립니다. 인간을 거룩하게 해주는 자연이 선물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이웃의 손길에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은총으로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 자녀의 특권을 누립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충만한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신 성자께서는 ‘생명의 빵’과 ‘계약의 잔’으로 성부께 ‘감사 제사’(CCC 1360)를 드립니다. 교회공동체의 삶의 중심은 미사입니다. 미사를 통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형제자매와 친교를 이루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고 참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삶이 사랑입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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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0-0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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