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전국 성당 도보순례한 서장범씨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꼭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니, 주님을 위해 그 세월을 차곡차곡 채워왔다고 해야 옳을까.

오롯이 두 다리로만 전국의 모든 성당을 돌아보자고 마음먹을 때만 해도 그 길의 끝을 생각지 못했다. 다 돌아보는 게 가능할 지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주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서장범(요한·67·서울 문정동본당)씨가 순례의 첫 걸음을 뗄 때만 하더라도 그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2007년 11월 10일 첫 순례에 나섰으니 꼬박 9년하고도 7개월이 넘는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셈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뜬금없는 생각이었다.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인터넷도 제대로 되는 데가 많지 않을 때. 갖은 자료를 뒤져가며 순례지를 정하고 지도를 사 모았다. 준비하는 데만 6개월.

“지금껏 제 삶을 지탱하게 해준 신앙의 뿌리, 고향을 찾아봤으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서울대교구를 시작으로 전국 성당을 돌기 시작했다. 그 길에서 52개의 크고 작은 공소도 만나고 122곳의 성지도 그를 반겼다. 그간 거쳐 온 1200곳이 넘는 문화유산은 순례길에 덤이었다.

당시만 해도 성당 이정표가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저~어기, 금방입니다.”

물어물어 찾아간 성당이 알려준 위치에 없어 허탕 치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인도가 없는 해안도로나 인적이 드문 길을 걷다 위험에 처할 뻔했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걷다 보면 하루 한 끼에, 찜질방에서 눈을 붙이는 게 보통이었다. 운이 좋아 성당 한 켠에 몸을 의지할 때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성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치 않았다. 도동성당과 천부성당이 있는 울릉도를 찾아가는 길은 바다날씨로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찾은 섬만 32곳.

인천교구 백령도성당을 찾아가는 배 위에서는 만감이 교차했다.

“성직자 영입 해로를 개척하다 순위도에서 체포돼 순교의 길을 걸어가신 김대건 신부님이 떠올라 한순간 울컥했습니다. ‘신앙 선조들의 열정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순례길에서 김대건 신부와는 열 번도 넘게 만났다.

직접 발길을 하지 않고는 몰랐을 역사의 순간과 마주할 때는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4·3항쟁, 이재수의 난(신축교난)을 겪은 제주를 직접 가보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제 역사의 한 부분은 어둠 속을 거닐고 있을는지 모릅니다.”

순례 여정에서 기도는 빠질 수 없는 법. 걷는 중에 묵주기도 40단을 바치고 애타게 찾던 성당에 들어서면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찾아간 성당이나 성지는 꼭 사진과 함께 그날의 감상과 여정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순례 중에 어느덧 일곱으로 늘어난 손주들에게 전해줄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나선 길은 지난 6월, 그의 기록에 1389번째로 이름을 올린 제주 동광성당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간 걸어서 순례한 거리만 5486㎞. 하루 평균 10시간, 50리 가까운 길을 오롯이 두 다리에 의지해 믿음의 뿌리를 찾아다닌 셈이다.

묵주기도 8925단, 전철 9004㎞, 버스 7만6398㎞, 국철 9087㎞, 승용차 5741㎞, 배 2551㎞, 비행기 1778㎞…. 꼽아 보니 지구 둘레의 세 배 가까운 11만45㎞를 순례했다. 그간 걸어온 여정은 「걸어서 땅 끝까지」로 제목을 붙인 9권의 순례기록 책자에 고스란히 담겼다.

“주님께서 제게 심어주신 열정을 발견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잘 몰랐던 저를 찾게 해준 여정에 늘 함께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서씨는 순례 중에 늘어난 전국의 성당과 공소들을 다시 찾아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제 힘이 어디까지 닿을 지는 하느님만이 아시겠죠.”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6-07-1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5

2베드 3장 8절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