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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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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찬미 예수님.

지난주에 현실과 이상 사이의 긴장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이러한 긴장 관계가 우리 인간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기본 조건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의 나'의 모습은 그와는 다르게 드러나고, 그래서 우리는 이 둘 사이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죠. 이제부터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 현실의 나의 모습을 이루는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 살펴볼 텐데요, 그중에서 먼저 이상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상적인 나의 모습, 곧 이상 자아란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어떤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되고 싶은 모습에는 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바라는 모습도 있지만 동시에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바라는 모습도 있습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면, 저는 게으르지 않고 좀 더 부지런한 사람이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상이죠. 그런데 사제로서 속한 공동체, 교회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예수님을 닮은 참된 목자로 살아가는 것이 제게 주어지는 공동체의 이상일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신 스스로의 개인적인 이상과 함께,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본당공동체에서든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로부터 기대되는 이상적인 모습도 우리는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이 지닌 이상자아든 단체가 지닌 이상자아든,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이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가치'입니다. 가치는 쉽게 말씀드리면 '좋아 보이는 어떤 것' 그래서 '바라고 추구하게 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죠. 앞서 제 경우라면, 해야 할 일을 미루며 게으름을 피우다가 늘 마지막에 가서야 고생하는 저이기 때문에 할 일을 미리미리 해놓는 부지런한 모습이 좋아 보이는 것이고, 그래서 저도 더 부지런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의 모습이 잘 바뀌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사제로서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신부님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참 다양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참사제의 모습, '맡겨진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목자의 삶'이라는 가치를 비롯한 많은 가치들이 담겨있죠. 그 가치들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이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시고, 그래서 교회 내의 많은 분들이 교황님을 보며 기뻐하고 감동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치'라는 말 자체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가치에 대해서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치라고 해서 늘 똑같은, 단 하나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도 여러 종류의 가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가치' 사이의 구별입니다. '주관적 가치'는 말 그대로 주관적인 것, 나에게 좋고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외모를 가꾸는 것에 신경을 쓰지만 어떤 이는 그런 것에 무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에게 중요한 주관적인 가치입니다.


이에 반해 '객관적 가치'는 그 자체로 중요한, 그래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예를 들면 정의라든가 평화, 사랑, 연대성, 책임감 등을 들 수 있지요. 물론 이러한 가치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아듣고 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지만, 어찌 되었든 많은 사람들이 큰 어려움 없이 정말 좋은 것, 그래서 추구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객관적 가치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가치를 구별하는 이유는, 이상적인 나를 이루기 위해서 나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가 어떤 가치인지를 식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제 경우로 말씀드린 '부지런함'이라는 가치는 어떨까요? 물론 이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수 있지만, 그래도 부지런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 곧 객관적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제로서 부지런하게 산다면, 한정된 시간을 더 알차게 사용해서 신자분들을 위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음식, 특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면 어떨까요? 맛있는 음식을 찾고 먹고 싶어 하는 것도 분명 하나의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모든 사람이 공통되게 받아들이는 객관적 가치이기보다는 '나에게 중요한' 주관적 가치죠.

물론 주관적 가치라고 해서 객관적 가치보다 반드시 덜 좋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요구되는 이상적인 모습, 제 경우라면 사제로서의 삶의 모습에 얼마나 합치하는 가치인가는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사제로 살면서 특히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멋진 옷을 잘 차려입어서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이상이라면 또 어떨까요? 근육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짱이 되는 것이라면? 글쎄요, 이런 모습들 자체로만 다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제로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신자분들에게 전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면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이유, 하느님을 찾기를 원하는 이유가 다들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신앙 안에서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생활 안에서 무엇을 바라시나요?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어떤 것을 청하십니까? 기도 안에서 청하는 가치들이 나 혼자에게만 좋은 주관적 가치인가요, 아니면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객관적 가치인가요?

우리들 각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들,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또 은총을 청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바라는 그 무엇이 어떠한 가치를 담고 있는지, 그 가치가 언제나 너 중심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길에 얼마나 부합하는 가치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보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마르 10,51)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는 물어보십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영성신학 박사와 심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기사원문 보기]
[가톨릭신문  2017.09.1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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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말씀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성인
성녀  마우라(Maura)
 마태오(Matthew)
 멜레시오(Meletius)
 알렉산데르(Alexander)
 요나(Jonas)
 이사치오(Isacius)
성녀  이피제니아(Iphigenia)
 팜필로(Pamphi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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