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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423) 깻잎 반찬과 수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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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아침 식사 때 반찬으로 깻잎 장아찌가 나왔습니다. 깻잎 장아찌를 좋아하는 나는 접시에 깻잎 장아찌를 ‘쬐끔’ 많이 담은 후 식탁에 앉는데 가수 양희은씨가 부른 노래의 한 소절이 생각났습니다.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들….’

나는 깻잎 장아찌를 바라보면서, 혼자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불러 보았습니다.

“깻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들….”

‘꽃잎’이 아니라 ‘깻잎 끝에 달려 있는…’하며 노래를 부르자 옆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려는 그 순수한 후배 신부님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강 수사님, 가사가 ‘깻잎’이 아니라 ‘꽃잎’인데.”

순간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해 버렸습니다. 나는 후배 신부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우리 형제는 이 노래 가사에 담긴 뒷이야기는 잘 모르는구나. 이 노래의 원래 가사는 ‘깻잎 끝에 달려 있는’이었어. 왜냐하면 젊은 시절 양희은씨는 반찬으로 깻잎을 무척 좋아했거든. 그래서 양희은씨는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의 맨 앞부분에 ‘깻잎’이라고 넣은 거지.”

“아, 그래요? 몰랐어요.”

“숨겨진 사연이라 당연히 모를 수 있지. 당시 양희은씨는 깻잎 반찬을 너무 좋아해서 헤어스타일도 ‘깻잎 머리’를 하고 다녔어. 그리고 양희은씨는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깻잎’을 생각하며, ‘깻잎 끝에 달려 있는’이라며 열창을 했지. 그런데 그 시절은 가수들의 노래 가사까지도 검열하던 시기였잖아.”

“저도 예전에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검열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어요.”

“암튼 검열 당국은 국민 가수 양희은씨가 노래 가사에 ‘깻잎’을 넣은 것에 대해 특정 반찬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들었던 거야. 특히 그 노래로 인해 국민들이 편식을 할까봐 우려했던 거지. 또한 당시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라 밑반찬으로 깻잎만을 강조하면 다른 채소들, 즉 상추나 그 밖의 야채에 위압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거지. 그래서 과감하게 수정 명령을 내렸던 거야.”

“아, 국민 가수가 깻잎만을 노래하면 전 국민이 깻잎만 먹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렇잖아. 양희은씨가 노래를 통해, 깻잎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깻잎만 먹을 수 있잖아. 특히 삼겹살 먹을 때에도 여러 채소를 같이 싸서 먹어야 하는데 오로지 깻잎만 편식해서 먹으면 안 되는 거잖아. 전 국민이 깻잎만 먹다보면 상추나 그 밖의 채소 농사를 짓는 농부님들도 힘들어 할 것이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가사에 대한 시정 명령을 내려서 ‘깻잎’이었던 가사가, ‘꽃잎’으로 바뀐 거야.”

우리 착한 신부님은 나의 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다 믿었습니다. 그리고 후배 신부님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옛날에는 노래 가사 중에 반찬도 검열을 했군요. 깻잎을 좋아했던 양희은씨 마음 또한 얼마나 아팠을까요. 한편으로 배추, 상추 농사짓는 분들 마음도 이해가 되고요.”

나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형제에게 뻥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뻥을 쳐도 다 들어주는 그 형제 때문에 내가 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문득 수도자의 역할이 원래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정결, 청빈, 순명의 삶을 살면서 사람들의 그 어떤 이야기도 다 들어주고 포용해 주는 존재. 그것 때문에 뻥을 친 사람 스스로가 양심에 찔려 더 미안하게 만드는 존재, 그 역할이 수도자가 아닐까 합니다. 그 날 나 역시 착한 수도자가 되기를 결심하면서 온종일 다음의 노래를 흥얼거려 보았습니다.

“깻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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