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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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양성 전문 기관으로서 대신학교 역할 새롭게 모색

특별기고: 신학대학과 대신학교 이원화 ② /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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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에 설정된 조선대목구 시기에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는 조선에서 유일한 신학교였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이듬해인 1911년에 조선대목구가 서울대목구로 개명되고 대구대목구가 분리 설정되자, 1914년에 대구대목구는 ‘성유스티노신학교’를 설립했다.

1920년에 또 원산대목구가 분리 설정되자, 1927년에 ‘덕원신학교’가 설립되면서 3개 신학교 시대를 맞았다. 이에 1928년에 예수성심신학교는 대신학교와 소신학교로 분리 운영하면서 특성화를 꾀했다. 하지만 교회 인준 신학교였던 터라 1942년에 일본 조선총독부는 동맹국 독일의 수도자들이 운영하는 덕원신학교를 제외하고 총독부 인가를 받지 않은 나머지 신학교들을 폐교시켰다. 1945년 2월에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서울대목구가 용산에 다시 설립한 ‘경성천주공교신학교’는 1949년에 북한 공산정권이 덕원신학교를 폐교시키자, 다시 유일한 신학교가 되었다.

1962년 3월에 한국 천주교회 교계제도가 정식으로 설정되면서 관구 제도가 도입되자, 1962년 4월에 광주에 ‘대건신학대학’이 설립되었다. 따라서 서울 ‘가톨릭대학’과 광주 대건신학대학이 ‘관구(연립) 신학교’와 같은 위상을 지니게 되었고, 1968년 9월에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은 가톨릭대학을 ‘서울관구 대신학교’(Inter-diocesan Major Seminary of Seoul)로 정식 인가했다. 하지만 1980∼90년대에 서울관구에 속한 교구들이 자체 신학교를 설립하자, 인류복음화성은 서울대교구의 요청에 따라서 1995년 5월에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서울대교구 대신학교’(Archdiocesan Major Seminary of Seoul)로 환원 인가했다. 이로써 다시 교구장이 직접 신학교장(Rector of Seminary)을 임명할 수 있는 교구 신학교가 되었다.

가톨릭대학에는 문교부 등록 정식 교수가 아니더라도, 1959년부터 신학생들에게 고해성사와 영성지도를 하는 외래 신부가 있었으며, 1962년부터 생활까지 지도할 목적으로 상주하는 지도 신부가 있었다. 1970년에 지도 신부들은 생활과 영성 지도를 본격화하고자 ‘지도신부단’을 구성했으며, 1971년 2학기부터는 ‘기숙사 사감 제도’를 신설했다. 결국, 1972년 8월에 학장이 대외적인 행정 업무와 학사를 책임지는 신학교, 신학원장이 대내적인 업무와 생활 지도를 책임지는 신학원으로 분리하는 이원화 제도를 단행했다. 하지만 1979년에 서울관구 주교회의에서는 신학생 양성에서 통합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학장이 신학원장을 겸임하는 일원화 제도로 회귀를 결정했다.

사실 당시 이원화는 신학대학과 대신학교로의 분리라고 볼 수 없다. 대학이면서 신학교로 인식되었던 가톨릭대학이 단지 학사와 기숙사에 대한 기능적인 분리만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1998년 9월∼1999년 11월에 학사와 기숙사를 분리하는 이원화 제도를 한 차례 더 도입했으나, 다시 일원화로 환원하여 2018년 12월까지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단행하는 이원화는 현 서울대교구의 실정에서 문헌 「사제 성소의 선물」에 따라 사제 양성을 더욱 효율적이고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제도와 방향을 과거와는 다른 시각에서 모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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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1-1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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