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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힌두 여인 눈물 닦아주신 주님

방글라데시 꽃동네 <3> 안정현 수녀(예수의 꽃동네 방글라데시 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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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꽃동네 <3> 안정현 수녀(예수의 꽃동네 방글라데시 분원)


▲ IM0724000036578.eps새벽 미사 직전, 못바리 성당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자매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경건해 보인다. 1

▲ 방글라데시 꽃동네의 파라텍 사랑의 집에 사는 캘런 라니 엘리사벳 아주머니.



방글라데시에서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무슬림이나 힌두인들은 일부다처제인 데다가 여인은 남자의 하찮은 소유물 정도로 취급당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명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시키는 풍습이 있다는 말도 들릴 정도다.

방글라데시 꽃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캘런 라니 아주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 같은 여자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떻게 같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아내를 그토록 모질게 학대할 수 있을까?

캘런 아주머니는 50대로 보인다. 이곳 여인들은 대체로 자신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40대나 50대 정도로 얘기하기 일쑤다. 힌두인 가정의 늦둥이로 태어난 캘런 아주머니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자라 힌두인 남자에게 재취로 시집을 갔다. 이름도, 성도 모르고, 얼굴도 한 번 본 적이 없는 사내였다. 자신이 두 번째 부인이 됐다는 사실을 안 것도 혼례를 마치고 며칠 지나서였다. 첫 번째 부인이 낳은 아들 셋을 키우며, 자신도 딸을 낳아 키웠다. 남편의 폭력은 목숨의 위협을 늘 느끼게 했다.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날아오고, 머리를 맞아 정신을 잃으면 몸을 불로 지져댔다. 계속 남편 곁에 머무르면, 딸과 함께 죽을 것만 같아 이른 새벽에 딸을 데리고 도망을 쳤다. 남편이 못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 남부 도시 치타공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딸을 키웠고, 그 딸이 17세가 되자 힌두인 남자에게 시집을 보냈다.

다시 혼자가 된 캘런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되돌아갔다. 힌두인 사회에서 남편은 곧 하늘이요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여자는 남편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그녀를 다시 남편 집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고, 폭력은 또다시 시작됐다. 머리를 맞아 피가 흘러도 폭력은 계속됐다. 왼손은 부정하다고 여기는 힌두사회에서 중요한 일은 주로 오른손을 쓰는데, 남편은 주로 캘런 아주머니의 오른쪽 신체를 집중적으로 못쓰게 했다. 폭력으로 정신을 잃으면, 신체 오른쪽에다가 불을 지르곤 했다. 결국, 캘런 아주머니는 정신 줄을 놓게 됐고, 남편은 그런 캘런 아주머니를 길에 내다버리고, 또 다른 부인을 맞았다.

행려병자가 된 캘런 아주머니는 병원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구호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때로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삶을 연명하기도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는지 기억하지도 못할 지경이다.

방글라데시 다카 외곽 파라텍 꽃동네 사랑의 집에 입소한 건 2007년의 일이었다. 그 뒤로 오랜 정신과 치료와 안정된 생활로 캘런 아주머니는 이제 건강을 상당히 되찾았다.

하지만 지금도 1년에 열흘가량 발작을 하면, 이 방 저 방 침대 위를 휘젓고 다니며 외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나를 그렇게 학대했느냐? 왜 내 몸 오른쪽만을 망가뜨려 놓아 음식을 만들지도 못하게 만들었느냐?”고 외치며 울부짖는다.

그렇지만 다시 안정을 되찾으면, 캘런 아주머니는 평상심으로 되돌아와 조용히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캘런 아주머니가 간절하게 말했다. 자신이 가톨릭 신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힌두교 신자이니 좀더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도 캘런 아주머니는 거듭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해서 그 마음이 진심임을 확인한 뒤 교리교육을 거쳐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도록 했다. 1년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고, 세례명을 ‘엘리사벳’으로 바꾸기도 했다.

건강이 회복돼 어느 정도 안정되자 캘런 아주머니는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고 또 봉사도 시작했다. 주방에 가서 감자도 깎고 설거지도 했다.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 목욕도 시키고 세탁도 했다.

여자아이들은 특히 캘런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랐고, 수녀들도 기도를 부탁할 만큼 기도생활도 열심히 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국가여서 가톨릭 선교 비자를 받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한정된 비자 수요는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새로 오는 사람에게 발급이 된다. 수녀들이 파견돼 와도 비자 때문에 무척이나 애를 먹고 다시 돌아가는 사례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수녀들도 늘 기도하는 캘런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하며 기도를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언젠가 한 번은 비자 때문에 난처하게 된 수녀에게 비자가 나올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한 적이 있다. 캘런 아주머니는 49일 기도를 시작했고, 기도를 마치는 날에 그 수녀의 비자가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그 뒤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캘런 아주머니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함께 기도하는 게 일상이 됐다. 하느님께서 캘런 아주머니의 기도를 참 잘 들어 주신다고 해서 직접 찾아가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그러나 “늘 기도하니 이제는 남편을 조금이라도 용서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캘런 아주머니는 곧바로 고개를 젓는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되고, 다만 하루라도 빨리 잊고 싶다”고 말할 뿐이다.

“기도하면 예수님 현존이 느껴져 한없이 편안해진다”는 캘런 아주머니는 오늘도 방글라데시 어딘가에서 살아갈 딸이 자신의 삶을 닮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살아가는 여인들의 한 많은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그리고 해결할 방법도 없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으로 방글라데시의 여인들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방글라데시도 사람 사는 곳이니 아름답고 달달한 이야깃거리가 없을까마는, 빈민이나 서민이 사는 곳에서도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에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의 선교 사명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 중에 있지만, 의지할 곳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구원의 공간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삶이 힘겨워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며 기도한다.

“주님!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 도구로 써 주신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도움 주실 분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방글라데시 분원)

우체국

301341-05-000409(예수의 꽃동네 유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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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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