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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품 성구와 나]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주님, 내 눈을 열어 남들에게 요긴한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시고, 내 귀를 열어 남들이 부르짖는 바를 듣게 하시고, 내 마음을 열어 남들을 돕게 하소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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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내 눈을 열어 남들에게 요긴한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시고, 내 귀를 열어 남들이 부르짖는 바를 듣게 하시고, 내 마음을 열어 남들을 돕게 하소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사제는 제2의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바로 사제는 예수님을 닮아 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아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가축들의 밥그릇인 구유에서 탄생하셨고, 양부이신 성 요셉을 도와 노동자로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세상 희로애락을 체험하십니다.

 그렇게 30년을 나자렛 고을에서 기도와 묵상, 노동을 통해 아주 평범하게 공생활을 준비하셨고, 그 후 요르단 강에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는 3년간 치열하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온갖 병자를 고쳐주시고, 밤낮으로 몰려드는 군중에게 영적 양식을 나누어 주시며 영원한 삶, 평화와 행복의 삶, 참 삶의 가치와 이정표를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강행군으로 고단하고 피곤한 전도여행을 끊임없이 펼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몸을 눕힐 편안하고 안락한 거처도 휴식 공간도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깊은 밤과 이른 새벽을 이용해 하느님 아버지와 깊이 일치하는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번도 천주성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다른 이의 선익을 위해서만 기적을 행하시는 이타적 삶을 온전히 사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력을 다해 피땀을 흘리며 선한 일만을 하셨지만, 비리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하고 정직한 모습의 예수님을 세상의 세력은 그대로 두지 않고 위험인물로 낙인찍어 제거하기로 작당하였습니다.

 하느님을 사칭했다는 이유, 국민을 선동해 정치질서를 교란하고 국가안보를 그르쳤다는 이유, 죄인과 어울리고 가난한 이를 변호했다는 이유, 신앙인의 본분을 저버리고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 등을 들어 종교의 최고 권위와 국가 최고 법정은 사형언도를 내렸고, 결국 십자가를 진 고난의 행렬 끝에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해 온 인류의 행복과 영원한 생명의 발판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지존하신 하느님의 외아들인 예수님의 생애 33년은 인간들을 위해 남김없이 봉헌된 삶이셨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재산과 가진 것이 너무 많았던 성경 속의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고 싶었지만 소유물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화려하고 웅장한 교황궁에 사는 것을 포기하고 순례객이 머무는 `성 마르타의 집` 한 칸을 빌어 아주 작은 공간을 사용하며 교황직을 기쁘고 행복하게 수행하고 계십니다. 교황께서는 가난의 삶을 산다고 하면서 실제로 가난한 자가 되지 않고, 곤궁한 처지로 내려오지 않고서는 가난한 사람, 가난한 교회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십니다.

 저는 강산이 몇 번 바뀐다는 수십 년간 사제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만, 수품 성구의 진정한 주인공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신명나게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가난한 삶과는 너무 멀리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저의 수품 성구를 읽을 때마다 부끄럽고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길게 남아 있지 않은 저는 과감하게 군더더기처럼 얽혀있는 가시적, 비가시적 장식물을 모두 털어버리고 소박하고 단순하며 꾸밈없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은총을 주님께 청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태양의 노래를 부르며 벌거벗은 몸으로 질주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닮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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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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