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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사회 회칙에서 시작됐다?

대회 창안한 쥘 리메 회장, 회칙 「새로운 사태」 영향 받아 스포츠를 평화의 도구로 활용, 분쟁국도 참가하는 대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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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 제1회 월드컵에서 우승한 우루과이에 쥘리메컵을 수여하는 쥘 리메(왼쪽).



지구촌이 러시아 월드컵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가운데 영국 ‘가톨릭 헤럴드’가 가톨릭적 비전을 갖고 월드컵 대회를 창안한 쥘 리메(Jules Rimet, 1873~1956)의 스포츠 정신을 기렸다.

프랑스 출신의 쥘 리메는 1921년부터 33년 동안 FIFA 국제축구연맹 회장으로 일하면서 월드컵 대회를 창안하고 발전시킨 ‘월드컵의 아버지’다. 하지만 레오 13세 교황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에서 영감을 받아 노동자들의 스포츠 활동을 장려하고, 이어 스포츠를 평화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분쟁국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를 창안한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시골에서 자라다 10살 때 파리로 이사 간 그는 가톨릭계 학교에서 공부하고 변호사가 됐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부터 가난과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에 눈을 떴다.

그런 그에게 회칙 「새로운 사태」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는 빛이었다. 영국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노동자 인권과 자본의 횡포 등에 관한 가르침은 담은 「새로운 사태」는 가톨릭 사회교리의 효시 같은 기념비적인 문헌이다.

그는 먼저 청년 노동자들과 어울리면서 ‘붉은 별’(레드 스타)이라는 아마추어 스포츠 클럽을 조직했다. 스포츠는 귀족 사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던 시절, 그는 이념과 신분 고하를 불문하고 누구나 참가해 즐기는 스포츠를 꿈꿨다. 당시 프랑스는 좌익과 반(反)성직주의 풍조가 팽배했다. 스포츠 클럽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클럽에서 정치 토론을 금지했다. 사회 개혁가로서 정부와 교회의 화해를 위해서도 고민했다.

클럽을 키우면서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한 그는 FIFA 출범의 산파역을 맡은 데 이어 1921년 제3대 회장에 취임했다. FIFA 조직을 재정비한 뒤 “축구는 세상 여러 민족 간의 이해와 화해를 증진할 수 있다”며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을 성사시켰다. 당시 그는 우승컵 하나를 제작해 가방에 넣어 갔는데, 이 컵이 ‘쥘리메컵’이라는 이름으로 1970년까지 우승 트로피 역할을 했다.

그가 국제 축구대회에 민족 간 화해와 아마추어 정신, 그리고 평등사상을 접목한 것은 회칙 「새로운 사태」를 비롯한 가톨릭 신앙의 발로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의 비극을 뼈저리게 겪은 체험도 한몫했다.

하지만 오늘날 월드컵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가 지나치게 상업성을 추구하는 현실은 씁쓸하다. 이와 관련해 쥘 리메의 손자 이브 리메는 몇 년 전 ‘더 인디펜던트’지 인터뷰에서 “할아버지가 돈에 장악되어가는 축구대회를 보셨다면 매우 실망하셨을 것”이라며 “이건 할아버지의 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가 한국 대표팀 편을 들어준 적도 있다. 1954년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한국이 헝가리에 9-0으로 대패하자, 일각에서 수준(?) 떨어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팀 출전금지 조치를 건의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한국 같은 나라가 처참하게 무너졌다고 해도 수십 년 뒤 모를 일이다. 그리고 월드컵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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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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