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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사회교리] (22)나누지 않는 것은 도둑질

내 부귀영화, 타인의 가난과 비참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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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오 교수

 

 


“탐욕스러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충분한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강도입니까?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입니다. 청지기로서 위탁받은 것을 그대의 소유물로 여긴다면, 그대는 탐욕스러운 사람이며 강도가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옷을 벗겨 빼앗으면, 우리는 그를 도둑이라고 부릅니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힐 수 있는데도 입히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달리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숨겨 둔 그 빵은 굶주린 이들이 먹어야 할 빵이며, 그대의 옷장에 처박아 놓은 옷은 헐벗은 사람들이 입어야 할 옷입니다. 그대의 신발장에서 썩고 있는 신발은 맨발로 다니는 이들이 신어야 할 신이고, 그대의 금고에 숨겨 둔 돈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살아야 할 돈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많이 도와줄 수 있는데도 도와주지 않는 것은, 그대가 그만큼 그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대 바실리우스, 「내 곳간들을 헐어내리라」 7. 노성기 옮김)



사유재산의 주인은 하느님, 인간은 청지기

대 바실리우스(330년경~379년)는 교부들 가운데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분배정의를 강력하게 주장한 교부이다. 교부들은 사유재산권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재화의 공동 사용권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사유재산권은 무제한적이고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다. 주님께서 잠시 맡겨 주신 재물의 청지기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주인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두 함께 사용하도록 창조하셨기에, 창조된 재화는 사랑과 정의에 따라 만인에게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바실리우스를 비롯한 교부들의 이러한 가르침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69항 ‘모든 사람을 위한 지상 재화’에 권위 있게 요약되어 있다. 그러므로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개인 재산도 나만의 것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공유물로 여겨야 하며,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유익하게 사용해야 한다.



죽이지 않았으나 강도, 훔치지 않았으나 도둑

공동 재화를 독점한 채 가난하고 궁핍한 이웃과 나누지 않는 탐욕스러운 사람을 바실리우스는 강도요 도둑이라 부른다. 세상의 법과 하느님의 법이 다르고, 세상의 심판과 하느님의 심판이 다르다. 세상 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느님 법으로는 필요 이상의 것을 넘치게 소유하는 것 자체가 강도질이며 도둑질이다.

우리 옷장에 처박아 둔 화려한 외투들은 추위에 떨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단벌옷을 빼앗은 것이며, 탐식의 밥상에서 흘러넘치는 음식들은 끼니조차 이어갈 수 없는 굶주린 이들의 밥그릇을 도둑질한 것이다. 은행에 넉넉히 쌓아둔 돈은 가난에 주눅이 든 사람들의 텅 빈 통장에서 훔쳐온 것이다. 내가 허영과 탐욕에서 허우적거릴 때 가난한 이웃은 생필품조차 지니지 못한 채 힘겹게 연명해야 하고, 내가 투기와 불로소득에 웃음 지을 때 가난한 노동자들은 고달픈 잔업 현장에서 피땀을 흘려야 한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는 부귀영화는 타인의 가난과 비참의 대가라는 이 슬픈 진실을 교부들은 일찍이도 깨우쳤다.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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