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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27) 거룩한 우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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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은 1839년(기해) 박해가 발생한지 180주년이었습니다. 그 박해로 새남터 형장에서는 세 분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순교자 중에는 조선 제2대 교구장인 앵베르 주교님이 계신데, 그 주교님의 출신인 프랑스 엑스 교구에서 큰 행사를 준비한 후, 새남터본당 교우들을 공식적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9월 중순에 30여 명의 본당 교우분들과 함께 프랑스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프랑스 엑스 교구에서 행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한국에 돌아오기 전, 2박3일 동안 루르드를 순례했습니다. 루르드에 저녁에 도착한 한 우리는 서둘러 식사를 하고, 짐들을 숙소에 둔 채 묵주기도와 촛불행렬에 참석했습니다. 그날, 전 세계에서 엄청난 순례자들이 왔고, 행렬을 하면서 각자의 모국어로 묵주기도를 하는 모습은 루르드의 밤하늘을 수놓았습니다.

그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난 우리는 아침식사를 한 후 침수 예절에 참석했고, 이어서 미사를 드린 후 루르드 지역을 순례하면서 베르나데트 성녀의 삶을 묵상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점심식사 후, 오후에는 각자 개별적으로 루르드를 순례했는데 많은 순례객들이 왔지만 조용하고, 엄숙하게, 기도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 순례를 하는 모습은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동굴 앞에서는 끊임없이 묵주기도와 미사가 봉헌됐습니다.

셋째 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 때문에 새벽에 미사 시간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른 시간에 숙소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루르드 성지의 예약된 성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비까지 오는 바람에 나는 몸을 잔뜩 움츠리며 10여 분 이상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어머, 강 신부님.”

누군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습니다. 새벽부터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객들의 발걸음 사이로 이미 성지순례를 마친 반대쪽 사람들 중에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렸더니,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자매님이 나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쳤던 것입니다. 사실, 10년 전부터 그 분 가족을 알고 지냈지만, 1-2년에 한 번 정도 뵙는 분이라….

자매님 얼굴을 보자 나 또한 놀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머나먼 땅, 프랑스에서 엄청나게 많은 순례자들이 있던 루르드 성지의 길 한가운데서 그것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는 새벽 시간에 심지어 비까지 오고 있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는 그 때에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이 정말…!

“와우, 자매님. 여기 어떤 일이세요? 루르드에 순례 오신 거예요? 가이드는 한국에서 루르드에 순례 온 팀은 우리 본당과 다른 본당, 이렇게 두 팀 뿐이라고 하던데. 자매님은 그 본당 교우도 아니잖아요. 암튼 신기해요,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자매님은 나를 보자, 말은 못하고, 목이 메인 듯 눈물만 주르륵, 주르륵 흘렸습니다. 비까지 와서 그런지, 자매님 얼굴은 비와 눈물로 뒤섞였습니다. 그냥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고 있는 자매님의 모습에서 반가운 감정 반, 뭔가 안쓰러운 감정 반…! ‘혹시, 자매님께 무슨 일이 있었나….’

“자매님, 그런데 왜 그리 우셔요? 저를 만나 반가워서 우는 거예요?”

주변을 잠시 돌아보니, 많은 순례자들이 성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미사를 봉헌하러 가던 우리 일행도 저 ? 만치 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그 장면은 한 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루르드 성지의 새벽 길. 로만 칼라를 한 젊은(?) 신부와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는 60대 자매님! 그런데 왜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시는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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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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