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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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30) 꽃을 사랑한 신부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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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친한 교구 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강 신부, 요즘 신자들과 미사도 못하고, 어떻게 지내?” “언제부터 신자들과 미사를 드릴 수 있을까, 그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 뭐. 나는 그렇고, 어떻게 지내?”

“나! 뭐, 그렇지. 나는 특수 사목을 하잖아. 그리고 교구에서 언제부터 미사를 할 수 있다고 공식적인 지침이 내려오더라도, 병원 측에서 또 다른 결정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야. 아마도 병원 측에서는 환자 보호 차원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안정적이 될 때까지 병원 강당에서 미사 봉헌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생각할 수 있어. 그래서 나는 미사에 대해서는 더욱더 기약 없이 살고 있는 중이야. 백수 아닌, 백수지 뭐.”

“암튼 코로나19 확산이 길어지다 보니, 하루하루 정말 지쳐가기는 하네. 암튼 나는 신자 분들을 지향 두며 사제관에서 매일 미사를 드리고, 본당을 잘 지키면서 내 건강도 지키려고 해. 하루하루, 신자들을 기다리며 참고 사는 중이야.”

“그래, 좋다. 암튼 그 말은 지금은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거지? 석진아, 너 혹시 너희 본당 마당을 노란색 꽃으로 가꾸어 보지 않을래?” “뭐, 노란색 꽃?”

그렇습니다. 그 신부님은 꽃과 나무를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 잘 가꾸기도 하는 신부님입니다. 그 신부님은 군대에서도 보직이 ‘원예병’이었다고 할 정도로, 꽃과 나무에 대해서 자칭(?)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느닷없이 노란색 꽃을 심어 보라고 하니! ‘이게 뭔 상황인가…!’

“너 지금, 하루하루 미사 재개 날짜와 함께 성당을 찾아오는 신자들을 기다리는 중이잖아. 바로 그 기다림을 노란색 꽃으로 표현을 해보는 거야. 노란색은 기다림을 상징하기에, 본당 마당을 노란색 꽃으로 꾸며 놓으면 아마 너의 마음이 신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거야. 그리고 마당 근처를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도 본당의 예쁜 꽃을 보면 무척 좋아 할 것이고.”

노란색 꽃이라…! 신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마음을 온전히 표현한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차분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좋기는 좋은데!”

“그냥 편안하게 생각해 봐. 이런 방법이 있어. 성당 마당이나 현관 주변에 옆으로 길쭉한 플라워박스, 화분 있잖아. 거기에 노란색 꽃들을 심어 주변에 공간 배치를 잘 해보면 돼. 한결 좋아질걸!”

“그러게, 해 보면 좋기는 할 텐데….”

순간, 머릿속으로 10초 정도의 생각들이 ‘휘-익, 휘-익’ 재빨리 지나갔습니다. ‘꽃, 흙, 플라워 박스, 얼마를 심어야 하지, 이 큰 성지 본당 마당에 어디에, 얼마만큼을 심어야하지, 그렇다면 아, 돈은 얼마나 들까….’ 전화기 속에서 짧은 정적 속에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눈치 챈 동창 신부님은 말했습니다.

“석진아. 너 방금 돈 걱정했지. 그럴 줄 알고, 내가 비용을 다 마련했어. 암튼 내가 꽃값을 전부 다 대줄게. 너는 그저 본당 주변에 어떤 꽃을 어떻게 배치할지 생각만 하고, 수량을 파악한 후, 날짜만 정해, 내가 가서 도와줄게.”

‘이그… 눈치 백단, 이 인간!’ 동창 신부의 속 깊은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사실, 오랜 동안 친구로 살아왔던 사람들은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그 속마음은 다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꽃으로 둘러싸인 새남터 성지와 본당을! 그런데 아름다운 상상이 현실이 되기에는 힘겨운 희생이 따르기 마련임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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