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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31) 꽃을 사랑한 신부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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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본당 마당과 현관 입구에 노란색 꽃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고민한 후, 다른 신부님들과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넓은 성지 마당에 꽤 많은 꽃이 필요했고, 꽃만큼이나 꽃값이 들었습니다. 동창 신부님이 꽃값을 주기로 했기에, 헤헤헤, 넉넉하게 꽃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정한 날짜가 되자, 차량 봉사자 분들의 배려로 배달료 없이, 지방에 있는 화원에서 노란색, 아니 ‘황금색 다알리아 꽃’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황금색 다알리아 꽃의 기운은 싱그러웠습니다.

신부님 세 명과 마침 성당 앞을 지나가던 교우 한 분과 함께 본당 마당과 성지 형장 주변에 꽃을 배치했습니다. 정말 화사했습니다. 화원에서 빨간색 다알리아는 덤으로 주셨기에, 성지 옆에 있는 성모님 상 앞에 놓았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작업을 했더니 모든 것이 뜻대로 되었고, 다알리아 노란색 꽃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꽤 괜찮은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 나에게 동창 신부님은 말했습니다.

“석진아, 이제 꽃에게 물을 줘야지.”

‘아, 맞다!’ 그렇습니다. 꽃을 가져왔으면, 꽃에 물을 주는 일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마당 주변에서 호스를 찾았더니, 왼쪽과 오른쪽 구석에 긴 호스와 물주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동창 신부님에게 2개의 호스 중 하나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이 호스로 물을 주면 되지?”

그러자 호스를 넘겨받은 신부님은 호스에서 물이 나오는 앞부분을 약하게 쥐고, 손으로 물의 수압을 재면서까지 꽃 한 송이, 한 송이에 물을 정성스럽게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했습니다.

“수압이 센 호스의 물로 위에서 마구 뿌리듯 물을 주면 흙이 다 패이고, 뿌리까지 물이 충분이 적셔지지 못해. 그래서 이렇게 천천히, 흙에서 물이 뿌리까지 잘 흡수되도록 물을 줘야 해. 석진아, 군대에서 꽃이 피는 묘종에 물을 주는 일은 누가 하는지 알아?”

“음…. 군기가 바짝 든 신참들이 하는 거 아냐?” “아냐. 그 반대로 시간이 많은 말년 병장들이 해. 그들은 제대를 준비하기에 여유 시간이 많이 있잖아. 그러니 시간도 잘 보낼 겸, 물주는 일을 해. 아주 천천히, 시간아 가라, 세월아 가라. 군대에서 물주는 일이 보통은 2시간이 넘고, 어떨 때는 3시간 이상 물을 주기도 해.”

“그러면 성당에 이 많은 꽃들을 물 주려면 얼마큼 시간이 필요할까?”

“나야 모르지. 그런데 아마도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물을 주면 2시간 전후가 되지 않을까! 그건 너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 분명한 건, 생명 있는 것을 잘 살리려는 마음은 진심으로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야. 정말이지 아름다운 희생이 필요한 일이거든. 좋은 사랑에는 좋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 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기다림을 상징하는 노란색 꽃을 장만했으면, 이제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지.”

그 후로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를 마친 후, 아침 8시 즈음이면 본당 마당에 나가서 꽃에 물을 주기 시작합니다. 쪼그려 앉아, 꽃의 뿌리로 물이 촉촉하게 스며들도록 천천히 물을 주면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처음에는 공짜로 노란색 꽃을 받는다는 것에 기뻐서 좋아했건만, 물을 줄 때마다 허리와 무릎도 아프고. 이제 겨우 일주일, 매일 아침마다 1시간30분씩 물을 주고 있는데, 처음에는 정말 힘겨운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익숙해 진 것 같고. 암튼 힘들 때마다 ‘생명 있는 것을 잘 살리려는 마음은 진심으로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야.’ 동창 신부님의 말을 되새깁니다. 이 말은 어쩌면 올 한 해, 내 마음 속에 화두가 될 것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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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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