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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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39)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가더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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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봄맞이 성당 대청소와 주변 정리를 계획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잔일들이 많아서 수도원 형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날을 잡아 수도원에서 6명의 젊은 형제들이 성당에 왔고 오후 내내 여러 일들을 도와주어 뒷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정리됐습니다. 정말 젊은 형제들은 묵묵히 일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 형제들을 보면서 나는 저녁에 맛난 것을 사 주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모든 일이 다 끝난 후 간단하게 씻은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저녁, 형제들 맛난 거 사 줄게. 뭐 먹고 싶어?”

그런데 형제들은 쭈뼛쭈뼛,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말을 해 주면 좋으련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혹시 닭갈비는 좋아해? 이 근처에 TV방송에 나온 닭갈비 집이 있는데.”

형제들은 웃음 짓는 얼굴로 서로를 쳐다 볼 뿐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 오늘 그 집 가서 저녁 먹자. 후회는 안 할 거야!”

우리 일행은 십 분 정도를 걸어서 식당에 도착했고, 빈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와서 물었습니다.

“주문은 뭐로 하시겠어요?”

형제들은 보라는 메뉴판은 안 보고, 내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이그…, 웬수!’

“우선 닭갈비 7인분 주시구요, 다른 거 뭘 좀 더 시킬까?”

형제들이 내 얼굴만 멀끔멀끔 쳐다보기에 물었습니다.

“닭갈비 익는 동안 막국수를 먹어 볼래?”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형제들의 미소를 보면서, 막국수 네 그릇과 음료수도 시켰습니다. 이윽고 음식이 나오자 형제들은 막국수를 가볍게 먹어 치웠습니다. 그러는 동안 닭갈비도 나왔습니다. 고추장 양념에 야채랑 떡 사리랑 닭고기가 잘 버무려져 있었습니다. 막국수를 먹는 동안 닭갈비 또한 거의 다 익었기에, 형제들은 닭갈비도 한 순간에 다 먹어 치웠습니다. 그런 형제들의 얼굴을 보면서 혼자 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맛이 없는 건가, 그냥 먹기만 하네! 요즘 젊은 형제들은 피자나 파스타를 더 좋아한다는데, 혹시 닭갈비를 안 좋아하는데 데리고 온 건 아닐까! 닭갈비가 너무 매운가. 젊은 사람들 중에는 김치도 못 먹는 이들이 있다던데! 혹시 우리 형제들이 그런가. 아, 암튼 내가 음식점을 잘못 선택했나.’

그렇게 말없이 닭갈비를 먹던 형제들은 왠지 부족한 표정을 짓기에, 쫄면 사리 6인분도 시켜 주었습니다. 그걸 다 먹자 형제들은 밥도 6개를 볶았습니다. 말없이 식사만 하는 형제들의 얼굴만 보던 나는 마음이 불안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궁금증 하나! ‘정말 맛이 없으면 안 먹을 텐데, 먹기는 너무나도 잘 먹네. 이상하지.’

형제들은 식탁을 완전히 싹쓸이 하듯 모든 것을 깨끗이 먹어 치웠습니다. 배는 좀 불렀는지, 자기네들끼리 무슨 말을 하며 웃기만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한 후 식당을 나온 우리 일행은 다시금 성당까지 천천히 걸어가는데, 나는 미안한 마음만 안고 갔습니다. 그리고 성당 앞에서 헤어질 때에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형제들, 정말 미안. 나는 형제들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내가 그냥 일방적으로 데리고 간 것 같아. 오늘 저녁 먹느라 힘들었지. 미안, 미안.”

형제들은 말로는 ‘너무나 잘 먹었다’며,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수도원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젊은 형제들, 저녁 사주고 이렇게 힘이 들 줄이야!’ 그러다 보니 내가 형제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저녁을 제대로 잘 안 먹었구나 싶어서, 사제관에서 라면 하나를 끓여먹은 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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