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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조금씩 새로워져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황진선 대건 안드레아(논객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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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축하합니다.” 파스카 성야 미사가 끝나면 신자들끼리 이렇게 말을 건네며 환한 웃음과 함께 악수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부활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셨으니, 기쁜 일임이 틀림없다. 우리 역시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으니 당연히 서로 축하할 일이다.

한데 나는 가까운 분들이 그런 인사와 함께 손을 내밀었을 때 선뜻 맞잡지 못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만 숙인 적도 많았다. 미성숙한 신앙 탓이다. 그것은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는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려면 예수님처럼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하고 고통과 수난을 회피하지 말아야 하는데, 사순시기에 그렇게 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순 때 좋아하던 술을 끊고 금연하는 분들도 주변에 적지 않았는데 나는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무늬만 신자로 어영부영 살다가 지난해 초 안셀름 그륀 신부의 「내면의 샘」을 읽으면서 나도 어쩌면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륀 신부는 ‘사순 길잡이’라고 소제목을 붙인 이 책에서 부활절을 준비하는 사순시기를 내적 자유를 수련하는 때, 나의 고유하고 참된 본질을 발견하는 때라고 얘기한다. “먹는 것, 마시는 것, 텔레비전 시청, 인터넷, 자동차 운행, 담배, 계속된 구매 등을 의식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욕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익히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런 구절들이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이기심 탓일 게다. 나눔의 삶을 살고 고통을 참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내적 자유와 참된 본질은 찾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륀 신부는 “수련은 삶의 참된 목표 의식을 갖는 것,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 마음을 열기 위해 우리의 몸과 영혼을 단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순시기에 교회가 더 강조하는 단식과 기도와 자선도 내적 자유와 연결한다. 단식은 인간의 육신과 영혼을 치료하고 내적 자유와 자아실현, 내적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 기도는 정화와 순화, 거룩한 변모의 길이며, 자선은 영적ㆍ육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부활의 뜻에 대해서는 ‘파스카’, 곧 건너감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한계를 넘어 아버지의 세상으로 건너가셨듯이, 내적인 자유와 참된 본질에 조금이나마 다가설 수 있다면 파스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풀이한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얘기를 나누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던 두 제자가 만찬 때에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보는 대목을 이렇게 설명한다. “제자들의 눈이 열렸다… 루카에게 부활은 본질적으로 열림과 관계가 있다. 마음이 열리고 정신과 눈이 열린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풀이를 정신적인 파스카로 받아들였다. 그륀 신부는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늘 반복하여 부활을 바라본다… 그러면 우리가 있는 장소는 건너감의 장소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올해 초 친구들에게 이런 인사를 보냈다. “우둔하다는 돼지가 재발견되고 있듯이, 황금돼지해를 맞아 우리 모두 자신을 재발견하고 조금씩 새로워져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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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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