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민족·화해·일치] 가톨릭 작가 A.J.크로닌 / 윤훈기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가장 인기 있는 가톨릭 작가는 A.J.크로닌일 것이다. 어떻게 그는 세계적 작가가 됐을까? 우선 그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계인이라는 점이다. 아일랜드인 부친은 가톨릭이었고, 스코틀랜드인 모친은 장로교도였다. 스코틀랜드는 종교분쟁이 가장 심했던 지역이다. 집 밖에서는 살육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크로닌의 집은 늘 평화로웠다. 부모가 서로 간의 차이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크로닌을 계속 천주교도로 키웠다. 모친이 개종을 강요했다면 창조의 원천인 따스한 모성을 물려받지 못했을 것이다.

고향 스코틀랜드는 가난한 자신을 의사로 만들어주었지만, 어느덧 변화 없는 공간이 됐다. 맑은 물도 고이면 썩듯이 타성에 빠지면 정신이 마비되고 도덕은 타락한다. 크로닌은 먼 남쪽 웨일즈의 탄광촌으로 떠난다. 언어와 인종이 다른 타향에서 그는 또 다른 경계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헌신적 휴머니즘으로 타향을 새로운 고향으로 만들었다. 죽은 듯한 신생아를 살리기도 하고 오진으로 정신병원에 갈 뻔한 사람과 무너져 가는 갱도에서 광부를 구하기도 했다. 또한 기존의 의학이론들은 의사들 호주머니에 유리하게만 형성된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반목과 질시를 무릅쓰고 탐욕에 찌든 의료계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다른 의사들과는 멀어졌으나 자신만의 소신에 가득 찬 새로운 치료법들을 만들어 나간다.

결국 그는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 런던의 개원의가 됐다. 명의가 되는 배경에는 의사 배우자의 귀감이랄 수 있는 부인이 있었다. 보통의 의사 배우자는 돈 많이 벌라고 닦달하지만, 그의 부인은 “의사가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며 “돈 많이 벌지 말라”고 다독였다. 의사가 진실해지면 내원객은 늘게 마련이다. 과로에 찌들게 된 그는 결국 중병에 결려 의업을 그만두고 휴식을 취하다가, 의사로서의 진솔한 경험들을 모티브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천주교도에겐 필독서로 타락한 신부와 성스러운 신부의 서사를 그린 「천국의 열쇠」, 자서전적 소설 「인생의 도상에서」, 의사의 가장 순수한 이상을 그린 「성채」 외에도 수많은 성장소설들을 남겨 놓았다. 그의 위대함은 언어예술을 통해 지역과 종교와 민족으로 분열된 영국을 화해시켰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나라 아일랜드와 어머니의 나라 영국 간의 화해가 한창이던 때에 「성채」의 주인공 맨슨은 의업으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와 잉글랜드 간의 화해를 시작한다.

천주교도인 부친이 장로교도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부친 사후에 모친이 개종을 강요했다면, 그가 높은 경계를 넘어 웨일즈로 오지 않았다면, 부인이 돈만 많이 벌라고 다그쳤다면, 이 아름다운 서사가 가능했을까? 20세기 초반 영국의 타락하고 분열된 사회상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민족화해와 통일을 꿈꾸는 천주교 자매형제님들께 크로닌의 그 고귀한 소설들을 읽어보시고, 우리에겐 뭐가 잘못인지 무엇이 천국의 열쇠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라고 꼭 권한다.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07-2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9

시편 122장 9절
주 우리 하느님의 집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나는 기원하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