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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아이들의 웃음소리 / 문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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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산책을 하다가 어린이 놀이터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노년 현상이라고나 할까요? 해맑고 앳된 얼굴들과, 풋풋한 웃음소리를 대하고 싶어서였지요. 그런데 막상 도착한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인 잃은 미끄럼틀은 텅 비어 있고, 함성과 함께 출렁거려야 할 그네 위에는 머리 하얀 할머니 몇 분이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재재거리고 있겠지’ 하면서 발길을 돌렸지만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는 없었습니다.

‘고샅에는 언제나 깨소금 같은 재미가 숨어 불개미 떼처럼 옥실거리고 있었다./ 한 구비 돌고 나면 신나는 숨바꼭질이 숨어 있고,/ 또 한 구비 돌면 따악 딱 자치기도 숨어 있고,/ 봉수의 마알간 물코도, 청돌이의 바알간 맨발도 구비마다 고물고물 숨어 있던 고샅….// 하루 내 해님을 돌리고, 더러는 휘영청 달님도 불러내곤 하면서/ 고샅은 사철 잠잘 줄도 몰랐다.… (졸작 「고샅」 부분)’

제 유년의 기억이 담긴 졸작의 한 부분입니다. 특정한 놀이터가 없던 우리들은 눈만 뜨면 골목길로 나와 천방지축 뛰어 놀았었지요. 숨바꼭질, 자치기, 부석치기, 말타기 등등… 골목길은 밤낮을 가리거나 계절의 변화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아이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가득했습니다. 항시 코밑에 마알간 물코를 달고 살았던 봉수나 날쌘돌이 청돌이패들이 골목길의 정복자요 난폭한 지배자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앳된 함성이 사라져가는 것이지요. 사실 해마다 문을 닫는 초등학교가 늘어나고 있고, 아예 갓난 아이 울음소리가 끊어진 마을도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얼마 전 아동문학을 하는 동료 시인이 던진 농담이 생각납니다. ‘소비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니 이 장사 때려치우고 딴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거 아냐? 늑장 부리다가는 쪽박 차고 말겠어.’

아동문학만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들이 사라져 마을이 하나둘 덩달아 없어져 간다면 우리나라는 장차 어떻게 될까요?

요즘 거론되고 있는 출산 기피현상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혼 부부들은 양육의 어려움을 들어 출산을 기피하고, 젊은이들은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출산의 전제가 되는 결혼마저 아예 외면한다고들 합니다.

문득 우리들의 부모세대가 떠오릅니다. 대부분 지독한 가난 속에서 어렵게들 살아왔지만, 기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출산을 기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잉태된 대로 낳고 길렀습니다. 허리를 졸라매고 냉수 몇 모금으로 끼니를 때워나가면서도 대여섯 또는 예닐곱이 넘는 아이들을 거뜬히들 길러냈습니다. 그것이 사람이 감당해야 할 숙명이며 또한 부모가 짊어져야 할 당연한 도리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이 땅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모에 대한 감사와 공경심은 바로 그런 데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닐는지요?

작은 고난이 두려워 부모 되기를 기피한다면 우리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어린이들의 티 없는 웃음소리는 생활의 신선한 활력소이자, 우리 삶을 승화 발전시키는 활력 그 자체입니다.

그 밝고 맑은 웃음소리가 멀리 그리고 넓게 퍼져나가는 한 이 세상은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삼석 (모세) 아동문학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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