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간극장’에 방영된, 이탈리아에서 온 김하종 신부님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 ‘안나의 집’ 사연을 보고 시를 써봤습니다.
그들은 제각기 경직된 몸으로
겨울 오후의 싸락눈을 맞으며
삼삼오오 긴 줄을 지으며 언덕을 올라갔다
가을무를 썰어 넣고 끓인, 딴에는
육개장이라고 쇠고기 몇 점과 기름치가 떠 있는 국밥을
바닥끝까지 긁어먹었다
식당 안은 어떤 이야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느리고 아득한 바닥을 긁는 소리뿐
그 소리는 마치
겨울바람이 늙은 아비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한쪽에서는 폐지를 줍는 김씨가
성호를 긋고 있었다
경기도 성남시 안나의 집
육교가 올려다 보이던 을씨년스러운 삼층건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낭떠러지 끝에서
국밥이 뿜어내는 김을 맡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 모습을 본 나는
국밥 속엔 예수가 없다는 주장을 할 수가 없었다
서로의 등에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겨울
갈곳 없는 그들은 똑같은 길을 걸어 내려간다
제각기 몸을 밑천으로 삼고
국밥마다 담겨져 있는 거룩한 성호를
내일 또 만나러 힘겨운 언덕길을 오를 것이다
서희(효주아녜스·안동교구 영주 가흥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