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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가정, 사랑의 힘을 기르는 보금자리 / 오세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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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네 짝궁보다 1점만 더 높으면 돼.”

얼마 전 등산을 하고 식당에 갔는데, 옆 테이블에서 젊은 엄마들 중 한 분이 자기 딸아이에게 강조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이러한 부모의 모습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기에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기실 전쟁과 기아, 독재와 산업화, IMF와 양극화를 거치면서 정치권뿐만 아니라 학교, 기업 등의 조직도 ‘남을 누르고 이겨야만 한다’는 생존경쟁이 극심한 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요. 이런 병든 사회에서 자녀에게 기를 살려 주고, 참사랑을 가르치는 가정 성화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 함께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가족에 기반한 전통 유교 문화는 오늘날 물질주의, 개인주의, 소비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급속히 약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유교의 ‘출세주의’ 가치관은 한국인의 정신을 아직도 강력하게 지배하면서 가족을 병들게 하는 폐단입니다! 조선조 유교시대 장원급제를 못해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한 한(恨) 맺힌 후예들의 집단 강박과 불안증이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여실히 나오지요.

험난하고 불안정한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집안에서 만큼은 가족끼리 서로 힘과 의지가 돼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모가 품는 욕망과 지향, 태도는 자녀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의 마음에 ‘내적 평화’가 없으면 아이들은 노이로제에 쉽게 걸리곤 합니다. 자녀가 1등을 한다 한들, 부모가 안달복달하며 평생 ‘초조와 불안의 멍에’를 지워 주면 신앙이 과연 무슨 소용일까요? 시험을 잘못 봐도 부모가 믿고 편안하게 지지하는 아이는 그 어떤 시련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스스로 인생을 즐겁게 개척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무조건 기도를 많이 하지 마세요! 자녀는 숨이 막혀 종교를 멀리할 수도 있습니다. 자녀를 온전히 사랑하고 서로 평화를 나누도록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한풀이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자녀는 ‘가문의 영광’이나 ‘체면’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의 꿈과 소명을 기쁘게 살아가며 이웃에게 봉사하는 길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존재합니다. 유교 한자 문화에서 인간(人間)이란 말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한 화두가 담겨 있지요.

가정은 참다운 인간을 길러내는 보금자리가 돼야 합니다. 인생순례에서 자기의 기대치에 묶이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기의 약함을 나누면서 타인의 약함을 감싸 안고, ‘서로가 의지하면서도(人), 함부로 대하지 않는 거리를 존중하는 삶(間)’은 예나 지금이나 AI, 4차 산업이 판치게 될 미래에도 가장 필수적인 가치입니다. 사실상 오늘날 취업대란 속에서도 최종면접에서는 성적이나 다른 그 어떤 스펙보다도 ‘타인과 함께 잘 어울리는 인간성(sociability)’을 가장 중시한다고들 합니다.

퀴블러 로스 여사는 「인생수업」이란 책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역설적이게도 어린 아기가 부모를 받아들이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부모의 학력과 재산도 모르고 부모의 외모도 성격도 판단하지 않고 ‘전적으로 의지한 채’ 부모의 존재를 무조건 반기는 아기의 활짝 핀 미소는 바로 하느님의 마음과 맞닿아 있지요. 아이가 커 가면서 부모의 조건과 기대에 맞춰 살도록 서로 기 싸움을 하며 ‘조건적인 행복’에만 집착할 때 우리 영혼은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병이 듭니다.

성가정의 본체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갓난아기와 같이 ‘상처받지 않은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우리 각자와 우리 부모님들을 계속해서 바라봐 주십니다. 부모님의 인생이 가난으로 얼룩져 학력이 짧아도, 재산이 많지 않아도, 주름진 얼굴에 몸매가 망가져도, 모진 상처와 실패의 아픔으로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도, 출세해서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못해도, 창조주 하느님과 더불어 자녀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창조사업의 동업자로서 그간 고생하며 수고한 모든 것을 기쁘게 생각하십니다. 이처럼 ‘자비’하신 하느님의 마음으로 나와 식구들을 비추고자 기도하고 희생하며 그 어떤 성취에 앞서 ‘존재 자체의 기쁨’에 감사할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가정생활에서 우리는 사랑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사랑을 위협하는 모든 악과 맞서도록 해 줍니다.”(프란치스코 교황)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세일 신부
(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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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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