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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이번 생이 망할 리가 있겠나요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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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망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유행처럼 하는 말입니다. 좋은 머리를 타고난 것도 아니요, 예쁘거나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 많고 든든한 배경이 돼 줄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은 기득권층 중심으로 꽉 짜여 있으니 정말 이번 생은 망했지 싶을 겁니다.

그러면 과연 다음 생이 좋으리란 보장은 있는 걸까요. 사실 ‘다음 생’이란 말 자체에 어폐가 있습니다. 이번 생의 ‘나’는 현재 부모들 유전자에 따라 성격이며 외모, 능력 등 모든 게 결정된 거고, 설령 다음 생이 있다 해도 그때는 전혀 다른 부모들의 유전자를 받고 태어날 테니 이번 생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생은 이번 한 번 뿐입니다. 그러니 비록 이번 생에서 잘 먹고 잘살기는 글렀단 생각이 들더라도, 섣불리 망했다고 두 손 들지 말고 부디 이번 생에 나름 의미 있는 결과를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할 일입니다.

이런저런 삶들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한국전쟁 때 혈혈단신 평양에서 월남한 아버지는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세상에 이름을 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아들 출근길에 반짝반짝 구두를 닦아 놓던 만년의 당신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박스째 사다 두고 미처 다 마시지 못한 소주 몇 병을 나에게 남기고 가셨습니다. 지금 우리 집 마당에 가득한 봉숭아, 분꽃이며 백일홍도 당신이 남겨 두고 간 흔적입니다. 어릴 적 봄마다 아버지와 함께 가꾸던 꽃밭은 이사를 몇 번 다녀도 그대로 나를 따라다니지요.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서 붙잡힌 인민군 소위는 36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고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그는 저 남녘 땅 한산도를 찾아가 소나무에 목을 매고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본인은 1990년 11월 24일 4시10분을 기하여 세상을 하직합니다. 당과 조국 앞에 무수한 과오를 범했고 앞으로도 씻을 길 없어 부득이 이 길을 택합니다. 일편단심 자기사상을 고수했을 뿐 이 세상에 왔다가 한 것도 없이 흐린 자취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슬픈 삶의 토로입니다. 요즈음 말 그대로 이 분의 이번 생은 완전히 망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남쪽 시선에서 보면 골수 빨갱이라 욕할 거지만 그 분 나름으론 모두가 평등한 사회주의 세상을 위해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니 결코 망한 생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중학교, 대학교, 고시공부를 같이 했던 내 친구의 이런 삶도 있습니다. 그는 고시합격 후 검사가 돼 정의의 칼자루를 휘두르다 과로로 간암이 진행되며 삶을 마쳤습니다. 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30년 전 어느 봄날, 철모르는 아들 녀석은 제 아비 묫자리 주변을 놀이터 마냥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돌아다녔습니다. 친구는 죽기 얼마 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멋모르고 검사입네 목에 힘주고 살아왔지만 만약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검사 노릇 때려치우고 변호사가 돼 정말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

얼마 전 아흔 살 고령의 어느 할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나를 찾았습니다. 부모와 형제들이 다 남과 북에서 높은 자리를 지냈답니다. 그분은 사업수완이 뛰어나 처녀시절부터 사업가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어찌어찌하다 어느 대학교수의 후처로 들어가게 됐고, 그 뒤 50년 세월 전처소생 자식들을 잘 키웠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이 이제 와서는 키워 준 어머니의 재산을 다 내놓으라고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할머니는 결단을 내려 평생 꿈꾸어 왔던 대로 남은 재산을 통일운동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유언공증을 했습니다. 여자로서 할머니의 삶은 그다지 행복한 편이 아니었지만 이번 생이 망한 건 결코 아니지요.

칼 라너 신부님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한 사람의 영혼과 육신이 이 역사 속에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고 하느님 나라를 추구한 당신의‘인격과 관심사’가 존속하는 거라 하셨지요. 그렇다면 우리도 이번 생에서 그저 잘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기 위해 어떤 됨됨이를 갖추고 어떤 일에 관심을 둘 건가를 잘 헤아려 보아야겠지요. 그리하면 이번 생이 망할 리가 있겠나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요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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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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