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특별기고] 힘든 세상의 흔들리지 않는 등불, 신앙의 빛 / 김혜경 박사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회칙 『신앙의 빛』을 내놓았다. 이번 회칙을 두고, 베네딕토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협력과 베드로좌의 지속성과 보편성, 사도성을 드러내며, 라칭거의 마지막 회칙이자 베르골료의 첫 번째 회칙, 그래서 두 교황의 네 개의 손으로 완성된 회칙이라는 등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핵심은 주교성 장관 마크 우엘레(Marc Ouellet) 추기경의 말대로 “라칭거의 많은 부분과 베르골료의 전부”가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8쪽 분량에 4개의 장(章)과 60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소책자에는 두 교황의 신앙에 대한 일치된 가르침이 간결한 문체로 담겨 있다. 전임 교황은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개최하고, ‘신앙의 해’를 선포해 신앙 회복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현 교황은 신앙 선포의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충격적이고도 신선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신앙의 빛』은 신앙의 해를 지내는 모든 이들에게 ‘신앙의 해’ 시작부터 예고했던 신앙 관련 가르침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신앙의 위기‘를 말한다. 하느님에 대해 논하면 지성이 미달되는 것처럼 보이고, 순수한 인간적인 행위로서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 마디로 인간화의 길을 걷기 위한 토대로서 믿음-신뢰가 필요한 시점에 직면해 있다. 회칙은 인간을 둘러싼 모든 측면을 비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의 순간에 ‘신앙’은 “고통 중의 강한 위로”(56-57항)가 된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어 어둠 속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2,46) 회칙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분, 새로운 불꽃・새로운 광채・신앙의 빛으로 소개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회칙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측면을 조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빛’을 갈망하는 인간 조건이다. 이교도 세상에서 ‘태양신’ 숭배는 영속성과 보편성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태양은 인간 현실을 온전히 비추지 못했고, 죽음의 그림자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인간은 태양빛에 힘없이 눈을 감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신앙의 빛’은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시작되고 그분의 사랑을 통해 인간 존재의 ‘모든 것’이 밝혀진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향한 내적인 믿음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행위를 이끌어내고, 그분이야말로 철학・과학은 물론 인간 삶의 모든 요소를 비추고, 인간과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하며, 인생에 의미를 더해 주는 분임을 깨닫게 해준다. 신앙은 인간의 눈을 열어 자기 존재 속으로 빛을 끌어들이도록 한다. 신앙의 역사(제1장)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충만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둘째, 신앙의 내용으로서 진리와 사랑에 대해서 언급한다. 니체 철학은 진리를 모색함에 있어 신앙을 분리시키고, 이성에 의한 빛과 신앙에 의한 어둠을 구분 짓고, 이성이 찾지 못하는 길만 신앙에게 유보하였다. 신앙은 주관적인 ‘어떤 것’이 되고, 빛이 결여된 ‘허공 속 도약’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아주 작은 빛’을 단초로 세상을 밝히는 객관적인 참된 빛을 찾아 나섰다. 신앙이 없는 상대적 진리의 허무를 경험하고(25-26항), 신앙에 기초한 절대 진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사랑 역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지만 진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현세를 넘어 영원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진리와 사랑은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둘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27항). 그리고 그 둘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진리, 그 자체이신 하느님’(요한 14,6), ‘사랑이신 하느님’(1요한 4,8.16)인 것이다.

셋째, 신앙인인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신자’(信者)는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의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랑을 믿은 사람들”(1요한 4,16참조)이다. 사랑을 믿지 않을 때, 우상을 숭배하게 된다. 우상은 “인간의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인간의 모습을 취한다.”(마르틴 부버)(13항) 우상은 자유와 사랑을 허용치 않는 지배자의 모습을 갖고 있기에, 무릎을 꿇고 해야 하는 복음화(프란치스코 교황, 7월 9일자 산타 마르타 강론)의 정신에 정면으로 대치된다.

넷째, 신앙의 빛이 비추어야 하는 곳, 세계화 시대, 그리스도교 사회교리의 화살표가 향해야 하는 곳으로서, 공동선에 대한 언급이다. 신앙은 모두를 위한 선(善)이자, 사회적 삶을 조명하는 공동선이다. 신앙의 빛은 세상과의 격리도, 우리 이웃들의 구체적인 임무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현존은 인류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분의 빛은 교회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희망의 미래를 건설하는 현장에서 정의와 권리와 평화에 구체적으로 행동하도록 재촉한다.(50-51항) 신앙으로 단련된 인간은 지성과 이성으로 하느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진리를 통해 참된 빛을 알아본다. 신앙은 온 인류와 관련하여, 공동선을 지향하는 가운데 영원한 희망이신 하느님과 만나는 지점이 된다.

회칙은 교회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소통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낡은 방식으로 무색해져가는 하느님 담론에만 매달린다는 일각의 비판을 불식하기에 충분하다. 현대사회의 언어와 소통 방식은 물론 현대인들의 고뇌에 대해 너무도 잘 알기에, 세상이 어둠을 이야기할 때, 교회는 신앙의 빛을 통해 희망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힘든 세상에서 허둥대는 인류에게 흔들리지 않는 등불로 신앙의 빛을 따라 걸으라고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믿는 사람에게는 그 빛이 보인다!


김혜경 박사(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7-2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0

루카 1장 49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