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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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진정한 의미의 존엄한 죽음은 환자 선택과 관계없이 보장돼야

▨ 연명의료결정법(안)과 가톨릭교회 입장 - 정재우 신부(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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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우 신부
 

  보건복지부는 11월 28일 연세대 의과대학 대강당에서 `연명의료 환자결정권 제도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방안 공청회`를 열고 연명의료결정법(안)을 발표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존엄사법 초안 공개`, `죽을 권리 제도적 보장 의미` 같은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와 관련, 공청회에 참석해 문제를 제기했던 정재우(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신부가 교회 입장을 정리한 특별 기고를 보내왔다. 법안의 주요 내용과 정 신부의 기고문을 정리해 소개한다.



 ◇법안과 언론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1. 존엄사 합법화 여론 조성

 존엄사는 소위 `김 할머니 사건` 이후 널리 회자되기 시작한 말이다. `존엄한 죽음`이라는 말이 주는 긍정적 의미로 인해 존엄사는 바람직한 개념이자 태도로서 필요한 것, 사회적으로 인정돼야 할 것 등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언론에서 이것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나 존엄사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지칭하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존엄사는 연명치료중지, 소극적 안락사, 죽을 권리 등과 함께 사용되고 있는데, 대개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죽는 것`을 존엄사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에는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두 가지 개념이 내포돼 있다.

 첫째, 아무런 기준도 근거도 없이 무엇이든 `무의미하다`고 간주해 중단하거나 거부할 위험이다. 그럴 때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기본적 돌봄까지도 `무의미하다`고 간주해 거부할 수도 있는데, 그 대표적 경우가 바로 영양ㆍ수분 공급이다.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익하고 신체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영양ㆍ수분 공급은 마지막 순간까지 적절한 방법으로 제공돼야 한다. 그런데 이를 무의미하다고 중단하거나 거부함으로써 환자를 죽게 한다면 그것은 대표적인 `부작위에 의한 안락사`에 해당한다. 만일 이런 안락사 행위를 존엄사라고 부르며 용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다면, 이는 명백히 부당한 일로 결코 용인될 수 없다.

 둘째,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죽는 것`에서 `죽는 것`에 초점을 두어 환자를 당장 죽게 하는 것이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할 위험이다. 환자를 인위적으로 죽게 하는 모든 경우는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안락사이며, 이는 의도적 살해 행위로서 존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훼손하는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이런 안락사를 존엄사라고 불러 용인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언론은 이번 연명의료결정법안을 `존엄사법`, `존엄사 선택법`이라고 부르면서 환자 자신이나 가족이 환자의 죽음을 선택, 결정하는 행위를 합법화한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는 안락사를 가리키는 의미가 매우 강하게 내포돼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으로 이미 합의를 얻었다고 말하며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2.`죽을 권리` 의식 확산

 `죽을 권리`는 환자의 의향과 무관하게 무익한 연명의료에 의해 삶이 `강요`된 상황에서 환자가 죽음을 맞이할 권리로 이해된다. 그래서 환자가 원하고 선택한 대로 죽을 수 있을 때 죽을 권리가 존중됐다고 하며, 이런 죽을 권리를 법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당한 것은 `삶`이 아니라 `무익한 연명의료`이다. 환자를 위해 진정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할 권리는 무익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권리, 유익하고 필요한 처치와 기본적 돌봄을 받을 권리이다. 이것은 죽을 권리가 아닌, 생명권에 속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환자에게 진정으로 `무의미한`, 즉 무익하고 불필요한 연명의료인지를 판별할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의학적 기준`이다.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즉 무익하고 불필요한 연명의료라면, 그것은 신중히 판단해 실행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의학적으로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라면 실행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3. 사전의료의향서나 가족 동의에 의한 연명의료 결정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무익하고 불필요한 연명의료가 무엇인지를 판별해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담당의사의 의학적 소견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된다.

 그런데 현재 여러 단체에서 작성 운동을 벌이고 있고, 이번 법안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전의료의향서는 담당의사의 의학적 소견이 참고될 여지없이 전적으로 환자의 의향만을 표시하도록 돼 있다.

 이렇게 되면 연명의료의 실시여부가 아무런 객관적 기준 없이 환자의 임의적 선택에 좌우될 것인데, 이것은 의료행위의 본질 자체를 왜곡시킬 뿐더러 환자 자신에게도 해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의료행위는 환자의 상태에 비춰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처치가 무엇인가를 가려내 실행하는 것이지, 환자가 원하는 바를 아무 판단 없이 그대로 실행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환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담당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한 적절한 처치와 돌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4. 우려되는 결과

 모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기본적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법이 질병으로 취약한 처지에 있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란 사회적으로 더욱 불리한 처지에 있는 환자일 것이다. 특히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나 가족들에게 부담을 줄 것을 꺼리는 환자의 경우, 연명의료를 적극적으로 거부해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 또한 자신의 의향을 미리 밝혀두지 못한 채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전적으로 보호자와 의료진의 결정에 맡겨진 환자의 경우, 기본적 안전장치가 없는 법에 의해 손쉽게 연명의료 중단의 결정이 내려져 부당하게 죽임을 당하게 될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환자는 죽음의 때가 다가올수록 가족과 사회에 `짐`처럼 여겨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이 불변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관은 흔들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가치가 존재 자체에서 인정되지 못하고 어떤 기능이나 역할이나 능력에 따라 평가되는 대상이 돼버릴 것이다.

 
 5. 2014년 2월 국회에 법률안 제출, 2015년 시행

 이번 법안은 개념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모호하고 허술하며 모순되는 부분이 매우 많다. 그런데도 불과 두 달 안에 법안을 완성해 국회에 제출한다는 것은 대단히 신중치 못하고 무리한 추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관계된 중요한 사안을 왜 이렇게 급히 서둘러 처리하려고 하는 것인가.



가톨릭평화신문  201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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