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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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6. 대전교구 공세리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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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성당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공세리성당 내부는 전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하게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늦가을의 색은 짙다. 하늘은 쪽빛에서 코발트블루로, 은행잎은
연노랑에서 진노랑으로 스펙트럼의 경계를 넘는다. 절기의 변화에 따라 연조(軟調)에서
경조(硬調)로 바뀐 풍경은 아련한 옛 추억을 또렷하게 떠올려 주는 마성을 지녔다.

 

겨울이 오기 전, 저만치 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으며 누구나 꼭 한번 찾고
싶어하는 아산 공세리성당을 들렀다. 주단을 깔아 놓은 듯 켜켜이 쌓인 울긋불긋한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성당 길이 소풍 나온 아이처럼 들뜨게 한다. 언덕 위에 자리한
성당의 빛바랜 파스텔 색조의 붉은 벽돌과 회벽돌이 깊어 갈수록 짙어지는 가을 대지의
색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마치 안갯속 몽환의 언덕에 오른 듯하다. 들뜬 관광객들의
소음을 바로 침묵으로 바꾸어 놓는 피안의 땅인 이곳은 분명 ‘기도의 언덕’이다.

 

함덕과 함께 내포 지역 최초로 본당 설립

이 지역은 순우리말인 ‘안개’가 지명이 된 곳이다. 바로 내포(內浦)이다. 공세리성당은
내포가 시작하는 충남 아산 인주면에 자리하고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고 했다. 내포는 가야산 앞뒤 10개 고을을 말하는 데 서쪽에 큰
바다가, 북쪽에 큰 못(아산만)이, 동쪽에 너른 들판이 있어 살기 좋다고 했다. 내포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신앙의 못자리’요 ‘순교자의 묏자리’라 불릴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이 내포 땅에 1890년 합덕(양촌)과 함께 최초로 본당으로 설립된 곳이 바로
공세리(간양골)이다.  

공세리성당 터는 원래 제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던 자리였다. 공세리는 조선 초기부터
아산, 서산, 한산을 비롯해 청주, 문의, 옥천 등 40개 고을의 조세를 쌓아 두던 공세지곡성(貢稅地穀城)이
있던 곳이다. 공세곶(貢稅串)은 800석을 실을 수 있는 조운선(물건을 실어나르는
배) 15척과 군사 720명이 배속돼 있을 만큼 요지였다. 세곡 관리들은 조운선의 무사
항해를 위해 아산만이 훤히 보이는 공세창 언덕 꼭대기에 침해당(沈海堂)을 지어
제사를 드렸다. 이후 고종 때 해운창이 폐지됐으나 공세리 주민들은 이곳에서 가족의
안녕과 만선과 풍년을 빌었다.

1895년 5월 공세리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드비즈 신부는 폐허가 된 공세지곡성
터를 매입, 침해당을 헐고 그 위에 성당을 세웠다. 드비즈 신부는 신자들과 주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베네딕토 성인을 본당 수호자로 모시고 새 성당 부지에 ‘성 베네딕토의
패’를 묻고 3일 기도를 드린 다음 공사를 시작했다. 드비즈 신부는 장방형 고딕
성당을 설계, 1922년 10월 8일 봉헌했다.



 

 

제당에서 성당으로 바뀐 지 94년

조세 창고에서 ‘복음 창고’로, 복을 빌던 제당에서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성당으로
바뀐 지 올해로 94년. 공세리성당은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하느님 자비의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드비즈 신부는 조세 창고가 복음 창고로 바뀐 이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무너진 공세창 성벽 돌을 주워다가 성당 종각 바닥에 1.5m 높이로 깔았다.  

공세리성당은 여러 차례 증ㆍ개축을 해 다소 원형을 잃었으나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제단 벽면 가운데에는 본당 수호자인 베네딕토 성인상이 자리하고 있다.
제단에는 옛 제대와 함께 주 제대가 놓여 있다. 또 제단과 신자석을 구분하는 난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제단 천장에는 ‘수고하는 자와 무거운 짐 진 자는 내게로 오라.
나 너희를 도으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성당 내부는 양쪽 나열된 기둥들에 의해 세 구획으로 나뉜다. 이 기둥들로 과거엔
남녀 신자석을 구분했다. 성당 양 벽면은 예수님의 일생을 주제로 한 색유리화로
꾸며져 있다. 냉기를 머금은 마룻바닥은 잠든 영혼을 번쩍 눈뜨게 한다.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자 기도 속으로 녹아든다. 그리고 내 영혼에 속삭이는 감미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나 너를 도우리라!” 하느님 자비를 체험하는 복음 창고이다.  

성당 맞은 편 옛 사제관은 박물관으로 새로 단장했다. 이 지역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 역대 본당 신부들이 사용했던 성구들이 전시돼 있다. 성당과 박물관 사이에는
380년 된 팽나무가 쉼터를 제공해 준다.

박물관 아래에는 순교자 현양탑이 서 있다. 이곳이 순교자들의 묘소가 있는 성지임을
알려 주는 표지다. 현양탑은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색 테라코타로 아산 지역 출신
순교자들의 모습을 부조로 장식해 놓았다. 그 아래에는 박의서(사바)ㆍ원서(마르코)ㆍ익서
3형제의 묘소를 비롯한 순교자 28위와 조 모니카의 묘석이 안치돼 있다.

성당 주위는 루르드의 성모상과 십자가의 길 14처, 성가정상이 꾸미고 있다. 가을
낙엽을 밟으며 걷는 이 기도의 길은 ‘정화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을 시작해 한
처 한 처 가다보면 십자가라 여겼던 삶의 고(苦)를 어느새 주님이 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설픈 나를 도와 마치 키레네 사람 시몬인 듯 불쑥 내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보면서 “저도 당신의 것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토해낸다.

공세리성당은 감미로운 만남을 주선한다. 그 대상이 누군들 상관없다. 이 만남은
희미한 옛 추억이 아니라 뚜렷한 현실이다. 언제든 만남을 추억하려면 공세리성당을
찾을 것을 추천한다.

공세리성당 연락처
공세리 성당 연락처 : 041-533-8181
주소
: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길 10
순례 미사 시간 : 화~토 오전 11시, 주일 오전
11시 30분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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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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