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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품은 명례성지에서 삶과 신앙을 묻다

이제민 신부, 솔직하고 담백한 신앙 고백으로 깊은 울림과 영적 감수성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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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교구 명례성지. 십자가 너머로 낙동강이 한눈에 보인다. 이제민 신부 제공







사랑이 언덕을 감싸 안으니

이제민 신부 지음 / 생활성서사 / 1만 5000원



“당신은 한처음부터 지금까지 저를 창조하고 계십니다. ‘한처음’은 과거가 될 수 없는 ‘지금’입니다. 지금 저의 모습입니다.”(38쪽)

그렇다. ‘한처음’에 시작된 하느님 창조사업은 창세기 때에만 일어나고 끝난 사건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분의 손길은 우리를 거듭나게 한다. 하느님 창조 사업은 오늘도 진행형인 것이다.

‘신앙은 이러이러한 것이다’ 하고 가르치는 책은 많다. 그런데 이제민(마산교구 명례성지 성역화 추진 담당) 신부가 최근 펴낸 「사랑이 언덕을 감싸 안으니」는 독자를 ‘신앙의 사유’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마력을 지닌 서적이다. 푹 우려낸 사골국 같은 책이랄까. 그만큼 한두 번 곱씹어서는 체득하기 어려운 사제의 깊은 성찰과 영성의 참맛이 문장 곳곳에 배어있다. 그냥 에세이라고 하기엔 사유가 남다르다. 삶과 신앙의 근본적 물음들을 적당한 운율 속에 배치한 문학 작품을 닮았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이 신부가 신앙의 단상들을 끌어올린 주 무대는 자신이 사목 중인 경남 밀양의 마산교구 명례성지다. 2011년부터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례 언덕 위에 살고 있는 이 신부는 이곳에서 자연을 예찬하며 하느님을 만나고 있다.

“당신은 언덕에 고요를 내리십니다. 세상을 관조하게 하시려고, 제가 누구인지 알게 하시려고 언덕 위에 고요를 내리십니다.”(15쪽)

‘침묵’과 ‘고요’는 특히 도시민이 쉽게 이루기 어려운 마음 상태다. 그러나 이 신부는 고요의 격(格)을 높인다. 자칫 외로울 수 있는 성지에서의 사목. 이따금 찾아오는 순례객을 맞이하지만, 일선 본당만큼 많은 교우와 함께할 일이 거의 없는 것이 성지 담당 사제의 삶이다. 그러나 이 신부는 침묵의 가치에 매료됐다. “침묵 속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당신의 말씀을 듣습니다. 침묵이 사랑을 위하여 말씀이 되셨습니다. 어미 자궁 속의 침묵은 자비입니다. 말씀이 된 침묵은 사랑입니다.”(72쪽)

교회가 전하는 ‘일치’의 가르침을 극적으로 표현한 구절도 눈에 띈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 성과 속, 빈부귀천은 서로 다르지만 일치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대립된 단어들이 일치를 이루는 곳에 빅뱅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납니다.”(17쪽)

이 신부는 겸손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일침도 가한다. “말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기는 수단이 아닙니다. 말하기 위해서는 소리 없이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 앉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78쪽)

목에 걸린 빛나는 십자가를 자랑거리 장식품으로 여기고, 부(副)를 포기하라면서 속으로는 부를 채운 일은 없는가.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면 더 많은 것을 돌려받으리라 계산했던 마음은? 세상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지 못하고 양이 아닌 ‘이리’의 삶을 살았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이 신부의 고백이 울림을 준다.

이 신부의 모든 글귀는 ‘하느님을 향해 생각하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다. 신앙의 스승으로서 체험하고 성찰한 토대를 내어 보여주고 있다. 무조건 “신앙생활 잘해야 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선 느끼지 못했던 ‘영적 감수성’이 독자를 감싸는 책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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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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