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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잃었지만 신앙에 눈 뜨며 새 희망 찾아

[대림 시기에 만난 사람] 1. 세례식 기다리는 최기준·박명순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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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순ㆍ최기준(왼쪽부터)씨 부부가 방문 교리교사인 박유아 선교사와 함께 교리공부를 하고 있다. 부부는 12월에 하느님 자녀로서 첫 성탄절을 맞을 준비를 해가고 있다. 이힘 기자

 
최기준(70)ㆍ박명순(67)씨 부부는 서울 불광2동 지하철 연신내역 인근 골목 허름한 감자탕집 식당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식당은 새벽 6시부터 인근 공사장 인부들로 가득 찬다. 밤에는 거의 술 손님들이다. 콧등이 벌건 취객들은 새벽 1시가 돼서야 자리를 뜬다. 부부는 이처럼 고단한 일상을 30년 넘게 반복하고 있다.

남편 최씨는 시각장애인이다. 30년간 앓아온 당뇨 합병증으로 8년 전부터는 앞을 전혀 못 본다. 각막 이식 수술을 세 차례 받았으나 그때마다 반짝 떠졌던 눈은 다시 시력을 잃었다. 대장암 수술을 받고, 청력마저 급격히 떨어진 최씨는 아내 없이 단 하루도 버티질 못한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서방님 건강하게 해주세요” 하며 정성껏 두 손을 모은다.

20일 오후 3시, 점심 손님이 빠져나간 텅 빈 식당은 무거운 정적으로 가득했다. 정적을 깨는 ‘드르륵’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아내가 손님을 맞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편도 식당을 향해 “선생님 오시길 기다렸어요! 궁금한 게 참 많았는데”라며 손님을 반겼다.

이들 부부가 그토록 반긴 이는 박유아(안젤라, 62) 선교사다. 박 선교사는 서울대교구 노인사목부 소속 방문 교리교사다. 식당 부엌 뒤편 숨겨진 한 평(3.3㎡) 남짓 쪽방에서 부부는 한 달 보름 전부터 매주 목요일 교리 공부를 하고 있다. 이 날로 6주째다.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부는 지난해부터 서울 6개 본당에서 방문 교리를 실시하고 있다. 방문 교리 기간은 보통 2개월(8주) 정도. 최씨 처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방문 교리교사는 ‘기쁜 소식을 전하러 하늘에서 온 천사’ 같은 존재다. 부부는 영세 2년 만에 구역장에 뽑힌 아들의 간곡한 권유로 시작한 방문 교리 수업 덕분에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12월 초에 세례성사를 받게 된다.

처음에는 교리 수업이 지금처럼 달갑진 않았다. 아들 권유로 시작했지만 부부는 사실 종교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교리 수업을 한번 두번 받으면서 점점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싹을 조금씩 틔우게 되면서 웃는 날이 많아졌다. 요즘은 목요일만 손꼽아 기다린다.

부부는 “배울수록 궁금한 게 많아지는 교리 공부 재미에 푹 빠졌다”고 닮은 웃음을 지었다. 학생과 교사가 비슷한 연배이다 보니 수업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공감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삶의 무게만큼 투박하고 거칠어진 손을 서로 부여잡고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격없는 사이가 됐다.

“처음엔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라고 하느님을 원망했지요. 그런데 교리 수업을 받으며 삶의 희망이 생겼어요. 눈은 보여도 꼼짝달싹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도 많은데, 그에 비해 전 양반이지요. 신앙에 눈 뜨면서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것과 곧 세례받는다는 것, 이 모든 게 주님 은총이고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부는 요즘 성경 읽기에 조금씩 맛들이고 있다. 부부는 아직 성경 완독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라는 말씀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한다.

세례성사를 앞둔 부부 얼굴이 주님의 ‘등불’과 ‘빛’으로 환해졌다. 교리 공부를 마칠 무렵, 뉘엿뉘엿 넘어가는 황혼의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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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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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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