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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기획] 일 생기면 달려가는 이주 여성들의 ‘친정’

대림 시기에 만난 사람 2 / 이주민 돕는 ‘국경 없는 친구들’ 역곡센터 지킴이 김혜숙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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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민들은 ‘국경 없는 친구들’에서 한국땅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희망을 꿈꾼다. 센터 지킴이 김혜숙(아빌라, 사진 가운데) 수녀는 이주 여성들의 친정엄마같은 존재다. 부모 교육을 마친 이주 여성들이 김 수녀와 이영선(레지나, 맨 왼쪽) 봉사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수녀님, 저 어제부터 자꾸 설사를 해요.” “수녀님, 저는 머리를 다쳤어요.” “수녀님, 저는 갑자기 고개가 안 돌아가요.”

이주민을 돕는 ‘국경 없는 친구들’ 센터에 난데없이 이주민 3명이 들이닥쳤다. 한 사람은 배를 움켜잡고, 두 사람은 머리를 감싸 쥐고는 아프다고 난리다. 센터 지킴이 김혜숙(아빌라, 예수수도회) 수녀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단 이주민들을 진정시키고 증상을 들어 보고는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줬다.

한숨 좀 돌리는가 싶었더니 중학생 아들을 둔 필리핀 이주 여성이 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학교에서 아들이 왕따를 당해 담임교사가 부모 면담을 하자고 해서, 학교에 같이 가달라는 요청이었다. 김 수녀는 약속 시간을 잡고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을 만났다. 한국말이 서툰 필리핀 엄마 대신 선생님께 전후 사정을 충분히 설명한 김 수녀는 “아이 좀 잘 부탁한다”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요즘 김 수녀는 길에 나서면 ‘홀 서빙 구함’ ‘아줌마 구함’이라는 문구만 눈에 들어온다. 괜찮다 싶은 가게가 있으면 연락처와 일하는 시간을 적어 둔다. 얼마 전엔 센터에 찾아와 “일자리가 없어 어떡하느냐”고 하소연하는 베트남 이주 여성에게 평소 봐둔 식당을 연결해주기도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이주민들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곳. 내 집처럼 편안하고, 친정엄마 같은 수녀님들이 계신 곳. 부천시 역곡에 있는 ‘국경 없는 친구들’ 역곡 센터다. 2004년 이주민 사목에 뜻을 둔 여러 수도회 수녀들이 도움이 필요한 이주민을 위해 만든 보금자리다. 현재 센터는 김 수녀와 안영자(요안나,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가 지키고 있다.

‘센터’라고는 하지만 상가 건물 2층에 66㎡의 좁은 공간이 전부다. 올해 6월까지만 해도 95㎡의 임대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지만, 다달이 내야 하는 세도 부담돼 근처 상가 건물을 전세로 얻었다. 장정 10명이면 발 디딜 틈이 없는 이곳에서 이주민들은 한국 땅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희망을 꿈꾼다.

이주민들에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시급한 일은 한글 배우기다. 말을 못하면 억울한 일이 생겨도 그저 당하고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경 없는 친구들 역시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토요일과 주일에도 한글반 교실을 열고 있다.

매 주일 2시간씩 1:1로 한글 수업을 받는 알메로 마일린(35)씨는 “공장에 다니느라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없는데, 국경 없는 친구들은 주말에도 문을 열어 참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국경 없는 친구들은 때때마다 이주민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교육을 마련한다. 최근에는 사춘기 자녀를 둔 이주 여성들이 아이들과 관계를 힘들어해 이들을 대상으로 부모 교육을 시작했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다. 김 수녀는 “사실상 50여 명의 개인과 10여 곳의 단체 후원만으로는 센터를 꾸리기가 불가능한데, 신기하게도 필요할 때마다 은인들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쌀 10포대를 짊어지고 오는 미군부대 가톨릭 동아리, 특별 후원금을 보내주는 영등포 한사랑회, 정말 다급할 때 수녀들이 도움을 청하면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는 사제들은 국경 없는 친구들의 온기를 유지하게 해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지난 11월 30일 주일 오후, 센터에서 부모 교육을 받은 이주민 여성 6명이 수업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려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이들에게 김 수녀는 김치가 담긴 봉지를 손에 들려줬다. 연말이 되니 국경 없는 친구들 앞으로 몇몇 본당에서 김장김치를 보내온 것이다. “와~! 수녀님, 오늘도 빈손이 아니네요. 감사해요.” 이주민들 얼굴이 활짝 펴졌다. 센터를 찾아온 이주민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김 수녀 마음이 덩달아 들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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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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