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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 / 이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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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마을에 예술의 씨앗을 심어 오래된 골목의 역사를 드러내고자 ‘행궁동 사람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일환으로 벽화작업을 진행, 행궁동골목은 아름다운 벽화들 덕분에 활력을 찾았다.

골목에 사는 어르신들은 줄곧 “행복하게 해 주어 고마워~”, “사람 구경하게 해 주어 고마워~”라며 좋아하셨고, 행궁동벽화골목을 찾는 관광객들도 “세계문화유산 화성도 아름답지만 행궁동 골목에서 사람향기와 예술을 느낄 수 있어 참 좋다”는 말을 전하고 돌아갔다.

매주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무료 벽화골목투어를 진행했고, 마을만들기, 도시재생을 준비하는 전국의 지자체에서 이곳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줄을 이었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골목이었고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사는 청소년들에게는 골목을 체험하고 걸으며 쉽게 인문학을 배우는 현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행정의 공백을 틈 타 2016년 골목에 개발업자가 기와집을 허물고 5층 빌라를 허가 받으며 주민들은 술렁였다. 골목 안에도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어 기뻐하는 사람과 주차문제와 쓰레기 문제 등을 걱정하는 사람, 그동안 어렵게 보존된 골목이 빌라촌으로 변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까지 골목 안은 혼란을 겪었다.

수원시 화성사업소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뒤늦게 파악하고 벽화골목길 보존과 오래된 한옥보존, 한옥신축을 위해 벽화골목 일대를 문화시설로 지정하며 빌라신축허가를 취소했다. 빌라촌이 되는 것은 막았으나 개발을 원했던 사람들은 기대와 실망감이 컸고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막은 문화시설 지정에 항의하기 위해 벽화에 붉은 칠을 했다. 아름다웠던 골목이 순식간에 흉물스러운 장소로 변했다. 벽화만 지운 게 아니라 그동안 쌓아 온 신뢰와 마을공동체도 송두리째 파괴되었다. 행궁동벽화골목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본인이 테러당한 것 같다며 마음 아파했다.

삶의 터전이었던 행궁동골목의 활기를 위해 시작한 작업이었으나 예상과 다른 결과에 힘이 빠지기도 했다. 그 순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하고 기도를 청했다. 그리고 행궁동벽화골목을 응원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2018년, 다시 주민, 작가들과 함께 벽화를 복원했고 시에서 매입한 빈집 4채를 현재 마을공방으로 꾸미고 있다. 신앙인이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위기였고, 그 덕분에 마을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이윤숙 (안나·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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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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