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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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59> 건축(12, 끝) 성당, ‘빛의 성작’ 또는 ‘어두운 성작’

성당은 제대 품고 성혈 안은 ‘커다란 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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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성작`과 `어두운 성작`. 독일의 건축가 루돌프 쉬바르츠(Rudolf Sch-warz, 1897~1961)가 말한 표현이다. 그런데 나는 이 표현만큼 성당 건축의 본질을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성혈을 담는 잔인 성작(聖爵)은 귀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유리가 매우 귀해 유리로 만들다가 그 이후 금과 은으로만 만들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고상하고 단단한 다른 재료로 만들 수 있도록 했으며 그 안은 반드시 도금하게 했다. 성체를 담아 두거나 사제가 환자에게 성체를 영해주기 위해 성체를 모셔갈 때 쓰는 성합(聖盒)은 성작과 모양이 비슷하나, 뚜껑이 있고 성작과 마찬가지로 금속으로 만들며 내부를 도금한다. 그러니 성작과 성합은 뚜껑이 있는가 없는가가 다를 뿐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영어로는 성작을 `찰리스`(chalice)`라 하고, 성합은 `시보리엄`(ciborium)이라고 한다.

 
▲ 산타 코스탄자 성당. 이탈리아 로마.

▲ 거룩한 십자가 성당. 독일 보트로프.
 
`빛의 성작`

 건축가 루돌프 쉬바르츠는 전후 가장 중요한 가톨릭교회 건축가다. 그는 1938년에 「교회 건축에 대하여」(Vom Bau der Kirche)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이것이 20년 후에 영어로 「육화된 교회」(The Church Incarnate)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그리고 그 영어판의 서문은 그의 친구이며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썼다. 미스는 그를 위대한 건축가이며 사고하는 건축가이자, 위대한 독일의 교회 건축가, 이 시대의 가장 사려 깊은 사상가로 평가했다. 쉬바르츠는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신부와 아주 가깝게 일을 했으며, 과르디니가 주도한 대규모의 독일 가톨릭 청년 운동을 위한 경당 설계를 시작으로 수많은 독일의 주요 현대 성당을 설계했다. 건축을 공부한 후 신학과 전례학을 공부했으며, 그의 건축 작품의 약 60가 성당 건축이었다.  

 쉬바르츠는 교회 건축의 평면을 7개의 이상적 형태로 제시했다. 그런데 그는 7개의 평면 중 두 개는 성당을 `빛의 성작`(chalice of light), `어두운 성작`(dark chalice)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의미 깊은 표현이다. `빛의 성작`은 세 번째 평면의 이름인데, 이 평면에서는 둥근 지붕 위에서 빛이 들어와 공간의 수직적 차원을 더해 준다. 마치 성작이 위에서 내려오는 밝은 빛으로 가득 차듯이, 성당 공간도 그렇게 빛으로 가득 차야 한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하늘 아래에 열려 있는 세상의 중심에는 제대가 있고, 제대는 하늘 밑에 있기 때문이다. 제대를 통해 땅은 빛을 향해 올라간다. 이를 두고 쉬바르츠는 이렇게 말했다. "한 줄기의 햇빛이 떨어지는 사물처럼 제대는 빛으로 옮겨진다. 제대는 해가 아니다. 그러나 제대는 빛을 받아 빛나는 땅이다."

 돔이라는 둥근 지붕 위를 뚫어 그 아래에 빛을 받아들이는 형식은 예전부터 중요한 건축에 자주 사용됐다. 그러나 교회가 이 형식을 받아들인 것은 둥근 지붕 위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은 땅과 하늘이 만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무거운 땅에서 벗어나 가볍고 밝은 하늘로 이어진다고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작도 마찬가지다. 성작은 단지 포도주를 담는 용기가 아니다. 성작 아래의 오목한 부분은 땅이며, 그 안에 비어 있는 것은 하늘이다. 성작은 하늘 아래 땅이 있으며 그 안이 빛으로 가득 채워짐을 드러내는 용기다. 그래서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담은 성반(聖盤)과 성작을 땅에서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장 뛰어난 건축인 로마의 산타 코스탄자 성당(Santa Costanza)은 돔이라는 둥근 천장을 얹은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원통 구조물 위에 뚫린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그리고 이 빛은 그 밑에 있는 제대와 공간 전체를 비추며 우리를 조용히 감싸준다. 둥근 천장에는 프란체스코 돌란다(Francesco d`Ollanda)가 1540년에 완성한 프레스코화가 하늘처럼 높은 느낌이 나도록 그려져 있는데, 그 안에 말없이 앉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몸과 공간이 하나가 된다.

 원통 공간 바깥쪽으로 볼트 천장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덮여 있다. 이 모자이크에는 볼트 천장 밑에 있는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중심 공간에서 나온 반사광이 겹치면서 시시각각 미묘한 빛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피어난 꽃과도 같이 아름답고 주옥과 같은 이 원형 성당은 다름 아닌 제대 위의 성혈을 담고 있는 거대한 `빛의 성작`이다.

 `어두운 성작`

 쉬바르츠는 다섯 번째 평면을 `어두운 성작`(dark chalice)이라 부르고 있다. 이 평면이 포물선이어서 들어올 때는 넓고 높게 들어오지만 제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공간은 조금씩 좁아진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팔을 벌리고 사람들을 기쁘게 맞아들이시지만, 안으로 들어오면서 공간은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겟세마니에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속으로 바뀌어 감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넓고 밝게 빛나는 정면을 뒤로 하고 제대를 향해서는 무거운 재료로 둘러싸인 채 어두움이 드리운다. 벽과 둥근 천장은 회중 위로 높이 올라가고 디테일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성당 공간은 서서히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시면서 고통을 받으시던 장소로 바뀐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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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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