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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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홈리스월드컵’ 출전하는 원주노숙인센터‘빡센축구단’

절망 딛고 축구공에 희망 실어, 오늘도 슛~
센터 입소자 등 노숙인 모아 지난 8월 창단
관심·격려 받으며 주 1회 경기·훈련 등 활동
월드컵 출전 목표로 희망·자활 의지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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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빡센축구단 선수들의 훈련 모습.

 
처음부터 노숙인은 아니었다. 막노동자, 사업가, 경비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한때는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거나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모든 것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한산한 토요일 오후 이들이 원주 봉화산 풋살장에 모였다. 201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홈리스(Homeless)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빡센축구단의 탄생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몸을 풀며 축구화 끈을 조이는 선수들의 정체는 바로 ‘빡센(PPAKSEN)풋살FC’(이하 빡센축구단). 노숙인 자활시설인 원주노숙인센터(센터장 이상길)가 지난 8월 27일 창단한 노숙인 축구단이다. 원주노숙인센터는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이사장 김지석 주교) 산하 갈거리사랑촌(원장 곽병은)에 의해 운영되는 복지시설이다.

축구를 통해 노숙인들에게 자활의지를 고취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본 이상길(바오로) 센터장이 곽병은(안토니오) 원장에게 축구단 창단을 제안했고, 곽 원장은 흔쾌히 허락했다. 곽 원장은 센터를 비롯해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베닉노의집’, 노인주거 복지시설 ‘아녜스의집’, 무료급식소 ‘십시일반’, 독거노인 주거지원 ‘봉산할머니집’ 등을 운영하며 ‘원주의 슈바이처’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곽 원장은 축구단이 받는 사랑을 강조했다.

“노숙인들은 삶에 의욕이 없고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운동을 통해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받습니다. ‘빅이슈코리아’에서 전문코치가 매주 지도를 해주러 서울에서 내려오고요, 다른 후원자들이 축구공과 유니폼을 지원해줍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하느님을 보지 못한다. 노숙인들 중에는 절망의 기억이 너무 커서 본인의 인생에서 희망이란 말마디를 지워버린 사람도 있다. 축구단이 받은 ‘조건 없는 사랑’은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있던 노숙인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켰다.

센터 입소자나 센터를 거친 노숙인 가운데 쪽방에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선수로 받아들여 창단 당시 14명의 선수가 탄생, 현재는 10여 명이 매주 경기와 훈련을 겸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학창시절 운동을 좋아했던 ‘운동권’(?) 학생들이었다.

선수들은 ‘빅이슈코리아’에서 파견나온 전문코치의 지도 아래 매주 1회 기본기 훈련을 받는다. 경기와 훈련을 할 때만큼은 자신이 오늘의 주인공임을 느끼며 축구를 통해 무언가 해보겠다는 열정을 불태운다.



축구공이 가져온 기적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문철주(가명·22)씨는 이날 경기에서 상대를 끈질기게 막아냈지만, 숨이 차올라 이내 경기장 한가운데서 퍼질러 앉고 말았다. 혼자 지냈던 탓에, 동료들의 관심과 장난을 오해하여 주먹부터 날렸던 문씨는 축구단 동료들의 격려와 칭찬으로 완전히 변화됐다고 고백했다.

“동료들이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줘서 큰 힘이 됐어요. 이젠 나에게 장난을 쳐도 ‘나를 좋아하니까 그러는구나’라고 이해하게 됐거든요.”

선수들은 ‘이기는 것’보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경기장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구호는 “잘했어”와 “끝까지”였다. 숨을 돌린 문씨는 후반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후련한 미소를 날렸다. 동료들은 문씨를 칭찬하고 안아줬다.

선수들은 경기와 훈련을 하는 동안 서로를 격려하며 공감을 나눴다. 스스로를 가두었던 어둠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건 상대방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훈련 덕분이었다. 운동 자체가 가져다주는 효과는 치유와 회복을 넘어,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선수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다른 사람을 위한 존재’(Pro-Existenz)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센터 직원들과 봉사자들도 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크게 감화를 받았다.

이상길 센터장은 “노숙인 생활을 하면서 독단과 아집 등이 생기는데, 경기에서 그런 것들이 사라진다”며 “축구를 통해 노숙인들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남과 화합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창단멤버 가운데 2명이 새로운 삶의 동기를 획득해 다른 직장을 얻어 나갔고, 1명이 가족과 재회했다. 3개월이 채 안 된 축구단의 기적이다.

2015년 홈리스월드컵대회

‘홈리스월드컵대회’는 전 세계 노숙인들이 모여 축구로 자립의지를 다지는 대회로, 스포츠를 통해 협력과 규칙을 배우며 노숙인들이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해왔다. 내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릴 홈리스월드컵대회의 한국대표선수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앞서 ‘빅이슈코리아’가 개최하는 ‘홈리스 건강축구대회’에 참가해 1~4위 안에 들어야 한다. ‘빅이슈코리아’는 홈리스월드컵대회 한국공식주관사로, 한국대표팀을 선발하고 이들을 훈련해 암스테르담 대회에 출전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홈리스월드컵대회는 가로 22m, 세로 16m 규격의 경기장에서 팀당 필드 플레이어 3명과 골키퍼 1명이 가로 4m, 높이 1.3m의 골대를 두고 전후반 7분씩 득점을 노리는 방식이다. 얼핏 쉬워 보이는 경기지만,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몸싸움과 빠른 패스 등의 움직임이 필요하기에 체력소모가 크다. 오늘 훈련은 전후반 20분씩 진행됐지만, 선수들은 크게 지치는 기색조차 없었다. 다음 훈련은 성남종합지원센터와 친선경기로 정해졌다.

“네덜란드 가려면 훈련을 빡세게 해야 돼.”

“그래서 우리가 빡센축구단 아니여, 빡세게 해보자고.”

내년 홈리스월드컵대회가 히딩크 감독의 고향 네덜란드에서 개최된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진 선수들이 새로운 희망에 눈을 반짝인다.

선수들은 지난 10월 3일 국회운동장에서 열린 ‘홈리스 건강축구대회’에 참가했지만, 아쉽게도 2승 2패에 머물러 대표선수로 선발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은 대표선수 선발경기에 거는 기대가 크다.

노숙인뿐 아니라 우리들에게는 우리를 날마다 전진하게 하는 크고 작은 희망들이 필요하다. 빡센축구단 선수들은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며 어느새 같은 희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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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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