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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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영성의 샘을 찾아서 - 유럽 수도원 순례] (4) 세상 안에서 영원한 삶을 드러내는 전통 수도원 프라우엔킴제·샤이에른 수도원

지속적인 환경 보전 연구에 기여하는 샤이에른 수도원/ 오랜 역사 가진 프라우엔킴제 수도원은, 타종교와의 대화·만남 정기적으로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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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이에른 수도원에 이어 정원 뒤로 피정의 집이 보인다.
 
 
수도원 성당 문을 받히는 돌의 두께는 한 뼘을 넘어선다. 그런데 그 묵직한 돌 가운데가 움푹 닳아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스쳐가야 그렇게 닳을 수 있는 지 가늠하기가 쉽잖다. 수많은 이들이 성당 문턱을 넘어 들어와 수도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또 수도자들에게 기도를 청한다.

수도자들은 일생을 다해 하느님을 찾아가는 삶을 살며, 하느님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그 삶은 세속과는 멀어져 있다. 세상의 가치는 무조건 나쁘고 교회만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을 위한 삶에 투신하기 위해 세상과 멀어짐을 상징한다. 청빈과 정결, 순명의 서약은 하느님을 위해,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을 버려나가도록 돕는다. 특히 베네딕토회 ‘수도승’들의 삶은 수행을 통해 관상생활, 즉 하느님과 일치하는 영적 여정이다.

수도원 순례는 수도자들의 공동체 생활과 그 삶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내 삶 안에서도 되새기도록 이끈다.



베네딕토 성인이 공동체를 만든 본래 목적도 사도직 활동 등은 아니었다. 성인은 오로지 하느님을 찾는 삶을 살기 위해 한 곳에 머무르는 ‘정주’(定住)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의 뜻을 따르는 공동체들은 역사의 흐름 안에서 각 지역교회의 필요성에 따라 교육이나 학문, 선교 활동 등에 종사해왔다. 하지만 베네딕토회 공동체들이 이러한 활동에 종사할 경우엔 반드시 아빠스좌 수도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각 아빠스좌 수도원들은 서로 종속관계에 있지 않고, 각자 독자적인 운영을 하는 이른바 자치수도원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베네딕토회 수도원들은 하나의 베네딕토회라기 보다는, 베네딕토 성인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회들이 유대를 맺어 연합한 ‘베네딕토회 총연합’으로 존재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한 수도원 순례 여정이 독일로 이어지면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프라우엔킴제 수도원’(Abtei Frauenwörth im Chiemsee, 이하 프라우엔킴제)이다. 이곳은 여성 아빠스가 있는 수도원으로 이름이 더욱 잘 알려져 있다.

킴제 호수 인근은 독일 바이에른 주 뮌헨 남동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휴양지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이기도 하다. 이 호수 안에 있는 3개의 섬 중 가장 큰 곳이 바로 프라우엔킴제(프라우엔인젤)다. 인구 300여 명의 작은 섬이지만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많은 순례객과 관광객들이 찾는 유서 깊은 곳이다.

프라우엔킴제는 오스트리아 크램스뮌스터 수도원 설립을 후원한 바이에른의 영주 타실로 3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설립됐다. 772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 현재 수도원과 성당은 782년에 축복됐다. 이 여자수도원을 이끈 첫 아빠스는 카롤링거 왕조 루트비히 1세 왕의 첫째 딸인 일멘가르트(Seliqe Irmengard, 831~866)였다.

아빠스(Abbas)라는 칭호는 12명 이상인 수도승 공동체의 최고 장상을 말한다.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연장자나 성덕에 뛰어난 수도승을 영적 아버지로 부를 때 사용된 ‘아빠’라는 칭호가 서방교회에 전해지면서 비교적 오래된 수도승 수도회들(베네딕토회, 시토회 등)에서 최고 장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게 됐다.

프라우엔킴제는 10세기까지 운영되다 헝가리의 침입으로 잠시 해체된다. 이후 아우구스티노회 남자수도회가 섬에 들어와 생활했으며, 신·구교의 대표적인 대립인 30년 전쟁(1618~1648) 중에는 수도자들의 피난처로 활용되기도 했다. 프라우엔킴제 1803년이 되어서야 다시 베네딕토회 여자수도원의 모습을 찾게 됐다.

프라우엔킴제는 논베르크 수도원(Stift Nonnberg)과 함께 알프스 북부 독일어권 지역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수도회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에서는 타종교와의 대화와 만남의 장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일반인들도 다양한 모임과 세미나, 행사 등을 위해 수도원을 찾는다. 지금과 같은 사순기간은 생강빵을 찾는 이들의 방문이 더욱 잦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중세 시대 때부터 유명했던 수도원의 생강빵은 보존기간이 다른 음식보다 상대적으로 길어, 모든 것을 절약하는 사순기간에 주로 먹었다고 한다.

프라우엔킴제에서 101km를 달리면 ‘샤이에른 수도원’(Benediktinerabtei Scheyern, 이하 샤이에른)에 다다른다. 이곳은 헬레나 성녀가 예루살렘 순례중 가져온 예수 십자가 조각으로 만든 ‘성 십자가’가 보관돼 더욱 유명해졌다.

천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수도원의 시작은 10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원은 처음엔 산 속에 터를 마련했지만, 물 공급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세 번이나 이사를 거듭해야 했다. 바이에른 영주의 성채였던 현재 위치에 자리 잡은 때는 1119년이다.

이 수도원 또한 30년 전쟁과 수도원 개혁운동 등으로 인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1838년이 되어서야 수도원은 재정비 단계를 밟으며 베네딕토 성인의 영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되살렸다. 1900년에는 100여 년 가까이 방치됐던 독일 에탈 수도원 등도 매입해 베네딕토회의 영성을 폭넓게 확산하는데 힘을 실었다.

1215년에 지어진 샤이에른 대성당은 화재 등으로 많이 훼손됐지만 수차례 다양한 양식으로 재단장되면서 뛰어난 예술성을 드러낸다. 대성당 안쪽에 자리한 옛 제의방은 수백 년 전에 만든 제의와 성경, 성화 등을 보관하는 성물안치소로도 활용 중이다.

샤이에른은 독일 바이에른 지방 전통 맥주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샤이에른이 운영하는 맥주양조장과 식당은 수도원에 들어서는 아치형 입구 바로 앞에 자리한다. 1568년 문을 연 수도원 맥주양조장과 식당 등은 오랜 시간 유명세를 떨쳐왔다. 정육점에 판매하는 고기와 햄, 치즈 등도 바이에른 지방 전통방법과 바이오연료 사용 및 친환경용법 등을 접목해 만들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이러한 활동은 수도원 관리 운영은 물론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에도 꾸준한 힘을 싣고 있다. 아울러 수도원은 지속적인 환경 보전을 위한 연구 등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학교와 기숙사, 게스트하우스 등을 통해 지역민들과 순례객들에게 보다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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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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