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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 (36) 잘 먹고 잘 산다는 것

그 누구보다 즐겁고 기쁘게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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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돼. 오후 여섯 시인데 아직도 40도야.”

건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제는 낮이건 밤이건 3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드뭅니다. 해도 점점 길어져서 여덟 시가 되도록 어둡지 않습니다. 선풍기를 켜도 시원하지 않고 오히려 먼지만 더 날려 목이 아픕니다. 이렇게 더위와 싸우며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북소리가 들려옵니다. 아, 오늘은 청년들의 성가연습이 있는 날입니다.

흥겨운 북소리와 청년들의 우렁찬 성가 소리가 저를 성당으로 향하게 합니다. 오늘은 왠지 성가연습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카메라도 챙깁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들의 시선이 저를 향합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뒤쪽으로 가서 자리에 앉습니다. 뒤에서 보니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꼬마들도 있고, 저보다 키가 훨씬 큰 청년들도 있습니다. 성가를 우렁차게 부르는 건 주로 키가 큰 청년들입니다. 꼬마들은 그저 북소리에 이끌려 와 언니, 오빠들의 성가연습을 구경합니다.

북소리가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은 북소리가 나는 곳에 자연스레 모입니다. 그리고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물론 성가를 부를 때에는 요란하게 춤을 추지 않습니다. 가볍게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꽤 보기 좋습니다.

이들의 성가연습을 보며 한국의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주일 미사에 나와 열심히 성가대 활동을 하고 복사를 서고 독서를 읽는 특별한 소수의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성당에 나와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떠나던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억지로 끌려온 듯 불편한 표정으로 왔다가 사라지던 아이들. 성당이 나쁜 곳도 아닌데 오면 안 될 곳에 온 것 마냥 급히 떠나가던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이곳에는 기타도 피아노도 멋진 드럼도 없습니다. 드럼통을 잘라 소가죽을 붙여 직접 만든 큰 북과 작은 북 뿐입니다. 음악을 전공한 성가대 선생님도 없습니다. 다른 지역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방학 때 본당으로 돌아와 그곳 성당에서 새로 배운 노래를 친구들과 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학생들이 곧 선생님입니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기쁘게 노래합니다. 신나게 노래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잘 먹고 잘 사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습니다. 하루 한 끼를 먹어도, 매일 똑같은 음식만 먹어도 이렇게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하루 세 끼를 먹고 다양한 요리를 먹어도 맥 빠진 사람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많은 것을 누리지만 이들보다 나은 삶을 산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몇몇 아이들이 자꾸만 저를 쳐다봅니다. 사진에 자신의 얼굴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는 것이지요. 저는 그들이 연습하는 자연스런 모습을 찍고 싶은데 자꾸 고개를 돌리니 맘에 드는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순수한 이들이 좋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신기해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저도 이들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청년들이 가볍게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성가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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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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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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