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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 (38) 평화로운 세상을 믿지 않는 아이들

이들에게 평화와 사랑은 먼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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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해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오후 8시쯤 돼서야 어둑해지는 요즘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진료소에 오는 시간도 늦어집니다.

진료시간에 맞춰 온 아이들을 모두 치료해주고 문을 닫고 들어가려는데 세 아이가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오는 것이 보입니다. 한 아이는 나뭇가지를 들고 오는데, 두 아이는 빈손입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오는 두 아이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띰마치 알리우, 로오이 데똑 알리우!(나뭇가지 안 가져오면 상처 치료 안 해준다!)” 그러자 두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친 데똑!(상처 없어요!)”

나뭇가지를 가져온 아이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는데, 두 아이가 창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쉐벳 지역에 도둑이 많아져서 신경이 쓰이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다가가서 아이들을 나무랐습니다.

방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쁜 행동이라고 말하며 꿀밤을 한 대 때려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녀석이 싸울 자세를 취합니다. 제가 때리면 바로 무언가가 날아올 태세입니다. 가만히 보니 동네 아이들과 뭔가 다른 것 같아 ‘목동이니?’하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들, 목동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목동들은 빨강이나 보라 또는 초록색의 단색 상의를 즐겨 입습니다.

진료도 끝났고 저녁을 준비하기 전까지 잠시 여유가 있어 두 아이를 앉혀놓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이름을 물어보니 한 아이는 마리알이고 다른 아이는 뎅이라고 합니다. 마리알은 소의 색깔 중 하나를 뜻하고, 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뜻합니다.

마리알과 뎅은 중학생 정도 되어보였습니다. 목동들은 마을과 떨어진 곳에서 소를 몰고 다니기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왜 목동 일을 하니?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니?” 그러자 마리알이 대답합니다. “저는 소를 돌보는 게 좋아요. 학교는 안 가요. 그리고 이다음에 크면 총을 가질 거예요. 그런 다음에는 렉하고 싸울 거예요.”

렉은 톤즈 지역에 사는 부족입니다. 이번 건기에만 해도 렉 부족과 곡 부족 간에 싸움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싸움은 나쁜 거야. 만일 네가 총으로 사람을 쏘면 언젠가 너도 총에 맞을 수 있어. 평화롭게 살아야지.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라고 말하자 아이는 “저는 평화로운 세상 안 믿어요. 지금도 평화를 위해 지역관리들이 회의를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계속 싸움이 일어나고 있어요. 평화는 없어요. 저는 꼭 커서 총을 들고 싸울 거예요”하고 대답합니다.

좋은 말로 아이들을 설득해보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얼마 전 자신의 형이 렉 부족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크겠지요. 그런 아이 앞에서 평화를 운운하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돌려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제를 돌려 성호경 긋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제법 잘 따라합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의 기도’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름을 불러주며 잘 가라고 또 보자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소 때문에 사람이 죽고, 복수가 끊이지 않는 이곳입니다. 삶의 의미와 목표가 소와 복수인 이들에게 평화와 사랑은 먼 일일까요.


 
▲ 마리알과 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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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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