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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 (45) 걸어서 아강그리알까지 (2)

길 위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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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그 길을 걷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걸어보며 더 많은 것을 눈에 담아보려 합니다.

쉐벳 시장을 지나는 길에는 집이 많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 마당에 앉아 놀고 있다가 제가 지나가는 것을 보더니 죄다 일어나 쫓아오면서 “가와자! 가와자!”하고 소리칩니다. 유럽사람을 의미하는 말인데, 얼굴이 자신들보다 하얀 외국인을 그렇게 부릅니다. 그럼 저는 “아부나 피터, 파더 피터”라고 부르라고 말해주지만 그 말을 듣고 따라 하기에는 아직 어린 아이들입니다.

오늘도 역시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제 옆을 지나가며 어김없이 물어봅니다. “어디가? 자동차는? 오토바이는?” 그럼 저는 “아강그리알에 가. 자동차랑 오토바이는 집에 있어”하고 대답합니다. 오늘은 ‘왜 걷느냐’는 말에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걷는 게 좋아.” 그러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나갑니다.

10km를 지날 즈음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한 학생을 만났습니다. 아는 아이였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다니엘?”하고 물었더니 ‘제이콥’이랍니다. 미안해집니다. 제이콥은 아강그리알로 가는 길이랍니다. 저를 앞서 가더니 멈춰섭니다. 왜 그런가 보니 체인이 빠져 있습니다. 체인을 걸고 조금 가더니 다시 빠지고, 또 빠지고 결국 자전거를 끌고 저와 같이 걷게 되었습니다.

제이콥과 함께 길을 걷다가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닭 한 마리와 병아리 세 마리를 들고 가던 아이들인데 병아리들이 비닐봉지를 탈출했다고 합니다. 다 같이 힘을 모아 병아리를 찾아 담고 함께 걷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가다가 한 아이를 만납니다. 제임스 아테르, 2년 전 독립기념일 행사 때 아강그리알에서 남수단 국가를 선창한 아이죠. 본당에서는 복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길 위에서 아는 아이들을 만나니 저도 기분 좋고 아이들도 외국인 신부와 함께 걷고 있으니 뭔가 신이 난 듯합니다. 제가 앞서 걷고 아이들이 뒤따라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몸이 가볍고 평소에도 많이 걸어서인지 굉장히 잘 걷습니다. 제가 스틱을 이용해 뛰어가듯 걸어도 뒤처지지 않고 따라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아이들은 22km 길을 슬리퍼를 신고 걷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적당히 흐린 하늘은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고 바람도 선선합니다. 아이들은 재잘재잘 떠들고 혼자 걷던 길은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가끔은 함께 기도를 하고 성가를 부르기도 합니다. 함께 사진도 찍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나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아강그리알에 도착할 무렵,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고 가정집 마당에는 저녁을 준비하는 모닥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즐거웠던 두 번째 여정을 마치며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저도 집으로 들어갑니다.
 

※ 남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 수원교구 해외선교후원회 http://cafe.daum.net/casuwonsudan

※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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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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