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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8) 고문의 고통

쇠사슬 형구에 묶여 몸을 가눌 수 없게 되고/ 매질과 영양부족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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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교사들은 갈수록 심해져가는 고문으로 극도의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북경교구 북당(北堂)본당 보좌였던 소지원(중국명 蘇志遠) 신부의 증언에 따르면, 공산당들이 그의 손과 팔에 쇠사슬 형구를 달아놓아 그의 몸은 마제형(馬蹄形, U자형)이 되어 몸을 가눌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날마다 쓰러지기를 반복하자 쇠사슬이 조여져 살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양팔과 다리는 부종으로 더는 움직일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공안원은 소 신부에게 서 있으라고 계속 강요했지만 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그들이 강제로 소 신부를 일으키자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 모진 고문을 받다가 추방당한 미국 선교사 제이콥 애드워드 왈쉬 주교.(왼쪽에서 첫 번째)
 
1954년 말이 되자 중국에는 남·여 외국인 선교사 58명이 남아있었다. 이 숫자는 옥중에 있는 선교사들까지 포함한 숫자였다. 그때까지 9명의 외국인 주교가 피살되거나 옥사하고 56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살해되거나 옥사했다.

호북성 노하구(老河口)교구 교구장 페로니 주교는 기차를 타고 홍콩으로 오는 도중 계속 정신을 잃어, 결국 호송하던 공안원이 병원으로 데리고 가 응급 치료를 받게 해 홍콩에 살아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페로니 주교의 병세는 이미 심각한 상황으로, 곧바로 입원을 했지만 다음 날 병자성사를 받게 됐다. 감옥에서 주는 음식이 소량인데다가 영양이 부족했고, 심한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었다. 페로니 주교는 4년 이상 감옥살이를 했는데 평소 체중 150파운드에서 70파운드나 빠졌다고 한다. 그러자 주교의 모습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형상으로 마치 나뭇가지 혹은 시신처럼 보였다고 한다. 홍콩에 들어온 페로니 주교의 나이는 64세가 채 안되었을 때였지만, 그의 모습은 90세가 훌쩍 넘은 병든 노인과도 같았다.

도미니코회 미국인 신부 3명은 복건성 복주(福州)에 2년 동안 연금되어 있다가 추방당했었다. 이 신부들의 증언에서도 고문의 끔찍한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도미니코회 신부들은 2일 혹은 5일 단위로 연속적인 심문을 당했었다. 공산당들은 그들을 고문할 때면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절대 앉지 못하게 하고, 국민당과 미군에게 정보를 제공한 죄를 시인하라고 다그치며 등과 다리는 대나무로 계속 내리쳤다고 한다. 이러한 심문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심문하지 않는 밤이 되어도 누워서 자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트라피스트회 혜(중국성 惠) 신부와 가(중국성 嘉) 신부는 중국 국경을 넘으며 뜨거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고 한다.

혜 신부와 가 신부가 처음 체포됐을 때는 도미니코회 신부들과 달리 5주간이나 쇠사슬로 묶어 놓아 전혀 움직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절대 일어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들 신부는 감옥에서는 매질은 물론 밥그릇에 밥이 아닌 돌을 담아주곤 했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가 신부의 치아는 두 개나 부러졌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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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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