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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9) ‘사상노동개조운동’

애국교회 반대하는 성직자·신자들은, 노동으로 사상 개조하는 노개형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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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에서는 1917년 10월 혁명이 성공한 후 종교인들을 ‘반혁명분자’ 혹은 ‘외국 간첩’으로 몰아 감옥이나 시베리아 강제 노동수용소로 보냈다. 중국에서도 이 영향을 받아 대중운동의 형태로,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노동개조운동(思想勞動改造運動)을 전개했다. 이 사상노동개조수용소는 보통 줄임말로 ‘노개영(勞改營)’이라 불렸다. 노개영은 크게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첫째 노동으로 속죄하고, 둘째 노동으로 사상을 개조하자는 것이었다.


 
▲ 옥사한 장백달 신부
 
중국이 공산화 되는 과정에서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처벌된 사람의 수는 약 50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 중 약 2000만 명이 이 노개형(勞改刑)을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중국이 애국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애국교회를 반대하고 교황청과의 단절을 거부하는 성직자들을 숙청해야만 했기에, 애국교회를 반대하는 성직자들과 신자들을 모조리 노개영으로 보냈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될 당시 중국의 경제는 붕괴 상태였다. 이 때 노개영의 수인들은 국토 개발과 경제를 일으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반혁명 분자와 종교인들이 노개영으로 보내져, 황무지를 기계가 아닌 인력으로 개간해 옥토로 만들고, 둑을 쌓고, 저수지를 파고, 국영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고, 도로 포장용 돌을 깨고, 벽돌을 굽고, 철을 녹여 기계를 제작하고, 탄광에서 일을 하는 등 다양한 노동을 감당했다. 이런 노동은 그야말로 인해전술 식으로 진행됐다.

1950년부터는 지식인들을 광범위하게 연루시키는 사상노동개조운동이 본격화됐다. 따라서 북경의 감옥은 거의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로 가득 차, 항상 기도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노개(勞改) 수인들을 대부분 요녕성, 흑룡강성, 내몽골지역, 청해성 등 기후가 한랭하여 개발하기가 매우 어려운 곳으로 보내졌다. 또 감옥 안에도 공장을 만들어두고 수인들에게 노동을 시켰다. 그중 요녕성에는 공업단지가 많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는 노개 수인들을 더욱 많이 보내졌다. 대련과 반금, 삼강구 등 동북지역에는 66개의 노개영이 있었다. 이외에도 티베트, 절강성 등 개발이 안 된 지역에도 노개영을 만들어뒀다. 노개영 1개소에는 많으면 수십만 명의 수인들이 보내지곤 했다.

아울러 당시 중국 정부는 사상범이나 반혁명인사, 종교인들, 정치범은 형이 만기되어도 취업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다시 노개영으로 보내어 강제 노동을 시켰는데 이는 ‘2노개(二勞改)’라고 불린다. 동북지역에만 2노개를 받은 사람이 4만여 명이나 있었다. 2노개를 받는 사람들에게 매우 적은 임금을 주는 규정이 있었는데, 공산당들은 그것도 삭감했을 뿐 아니라, 삭감한 돈은 국고에 입금시키거나 공산당 간부가 사적으로 사용하곤 했다. 당시 반혁명으로 몰린 사람은 중형을 내려 형량이 제일 적어야 노개형 8∼10년을 받았으며 많은 경우 총살당하기도 했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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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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