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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박해기 - 강제 수용소의 선교사들] (13) ‘미사봉헌 때의 기적’

미사봉헌 중 거양 성체할 때 여러 차례/ 신자들이 예수님 형상 보았다고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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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수성 대리주교(가운데).
 

전수성 대리주교는 애국교회에 가입하지 않은 대가로 1956년 처음 체포됐다. 그러고는 전 대리주교는 교황청을 옹호하다 다시 체포돼 15년의 노개형을 받았는데 심한 노동으로 가슴에 독창이 생겨 인사불성이 된 적도 있었다. 당시 간수들은 아직 임종도 하지 않은 주교를 매장하려고도 했다. 다행히 간수들이 들것에 담아 메고 가는 도중 비가 내려, 그 비를 맞은 주교가 깨어나자 다시 노개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중국정부는 1969년 가을, 전 대리주교가 고령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를 고향인 남양으로 보내 그곳에서 노동을 시키고 감시감독을 했다. 이후 전 대리주교와 관련한 기적과 같은 일이 수차례 보고됐다.

그가 고향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중 거양 성체를 할 때, 신자들은 여러 차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미사 때마다 여러 명의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봤다고 밝혔을 뿐 아니라, 전 대리주교가 봉헌하는 미사 때마다 예수님의 형상을 보았다고 증언하는 신자들까지 있었다. 또 거양 성체 때 신자들이 본 예수님의 형상은 각자가 모두 달랐다. 어느 신자는 예수께서 산상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고, 어느 신자는 십자가상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했다. 전 대리주교가 미사를 봉헌하는 중에 예수님이 발현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전 대리주교는 애국회 미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81년 12월 18일 제3차로 체포돼 남양감옥에 투옥됐다. 당시 전 대리주교 병자성사까지 받았을 정도로 위중한 상태였지만 공산당들은 무조건 그를 체포해갔다. 전 대리주교는 1983년 5월 25일 안휘성 노개영에서 선종했는데, 공산당들은 그가 선종하자마자 그날로 화장을 시켜버려, 신자들의 슬픔은 더했다. 특히 신자들이 노개영을 찾아가 전 대리주교의 유해함을 찾아왔는데, 그 색깔이 붉게 물들어 있어 보는 신자들마다 통곡을 했다고 한다.

한편 동북지구는 중국에서도 전형적인 한랭기후를 보이는 지역이다. 게다가 반금의 겨울 기온은 평균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며, 이곳에서는 1년 중에 6개월은 모래 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모기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이곳 모기는 독하기까지 해, 한번 물리면 즉시 살이 콩알만 하게 부어오른다.

이러한 반금 지역에 만들어진 노개영에는 약 3만5000여 명의 수인들이 감금돼 있었다. 1953년 광동성과 강서성에서 반혁명죄로 끌려온 4000여 명의 수인들을 비롯해 성직자들도 다수가 끌려온 곳이었다. 노개 수인들은 대부분 이곳의 척박한 기후와 물 등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는데, 그나마 제대로 된 건물조차 없어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곳 수인들은 한겨울에도 한여름에도 천막으로 지어진 노개영에서 지냈는데, 바람이 조금이라도 세차게 불면 천막이 무너져 내리고 비만 오면 천막 안으로 물이 새어들어 수인들의 고생은 더욱 심했다.

서양자 수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만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에 소속돼 있다. 저서로는 「중국천주교순교사」,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 등이 있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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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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