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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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16) 미투(#Me Too)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영적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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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성폭행 피해자를 위한 시위 참가자들에게 판매된 #Me Too 배지. 【CNS】



성적인 악은 원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중대 문제다. 뱀으로 비유되는 악이 개입된 영적 사건이기 때문에 인간의 방식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현재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은 대중의 관심과 분노를 촉발시켜서 정의를 이루는 느낌을 주지만, 이는 용서와 화해로 가는 길이 아니다. 성적 범죄는 성에 대한 철저한 영적 이해를 바탕으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미투 운동을 영적 치유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성문제의 표층적 차원

재벌 2세 남성이 가난한 여성을 사랑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드라마는 IMF 이후 항상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는 드라마 속 환상일 뿐이다. 현실에선 여성이 농락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실에서 재벌 2세인 것처럼 가장하고 나타난 남성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사업을 물려받으려면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는 말로 여성에게 대출을 받아오게 한다. 여성은 시키는 대로 다 하고나서 깊은 상처를 받는다.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다. 반대로 남성이 피해자, 여성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재판을 하면 가해자는 처벌을 받는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런 해결로는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



성문제의 영적 차원

이 현상의 이면에 자리한 영적 뿌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피해자가 당하는 이유는 의존성이 강한 영을 품고 있기 때문인데, 이 영은 성적·금전적 착취를 하는 사람에게 끌리게 한다. 본질은 ‘당하게 하는 영’과 ‘가하는 영’이다. 이 영이 내 안에 나로 위장해 있기 때문에 거짓 자아인 영이 느끼는 감정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따라가 버린다.

남녀 내면에 각각 숨어 있는 이 영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처음에는 잘 지내는 척하다가, 결국 한쪽은 착취를 당하게 또 한쪽은 착취를 가하게 하면서 상처를 입히고 원한과 분노를 키우게 한다. 표층에서는 가해자의 악만 보이지만, 영적 심층에서는 피해자 안에 있는 악도 드러난다. 당하게 하는 악인데, 이 악은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악이 가해자에게만이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영적인 진실이다. 이 둘이 맞물릴 때 죄가 형성된다. 따라서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영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성적 상처에 대한 영적 치유란?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진정한 치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안에 있는 의존과 망상의 영, 억울하게 당하도록 끌어가는 악을 없애줘야 한다. 이 악을 제거하거나 그 힘을 약화시켜주지 않고 가해자만 처벌하면, 피해자는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예수님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갈라서 판단하지 않으셨다. 군중에게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고 하셨고,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고 하셨다.

예수님은 두 악을 각각 지적하여 쫓아내셨다. 진단의 깊이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군중들에게는 그들 안의 악을 인식시키고 치유하셔서 살인 무기인 돌을 내려놓게 하셨다. 여인에게는 더 깊은 치유를 베풀어주셔서 악을 분리해주셨다. 현재 벌어지는 미투와 예수님 치유 사이의 극명한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악의 양쪽 매듭을 동시에 풀어버리는 진정한 영적 치유로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다.



왜 분노 표출보다 영적 치유가 우선인가?

간음했다는 이유로 잡혀온 여인과 현재 미투를 외치는 이들의 공통 입장은 뭘까? 상황은 달라 보이지만 성경속 군중과 깊은 상처를 준 성폭력 가해자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영적으로 보면 이는 피해당한 사람 안의 당하게 하는 악이 보는 시각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 시선에 결코 동의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의 딱한 처지에는 공감했지만, 여인의 분노 표출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 분노는 여인의 감정인 것 같지만, 여인 안에 숨어 있는 영이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에 이것이 군중을 향해 표출될 경우, 군중 안의 악이 또 터져나와 여인의 상처를 더 깊게 한다. 악의 증식 원리를 잘 아시는 예수님은 악의 입은 다 틀어막고, 군중과 여인 모두에게 근원적 치유를 해주셨다. 이것이 진정한 돌봄이고 사랑이다.

그런데 지금의 미투는 방송을 통해서 공개되고, 이후 엄청난 2차 가해를 불러들인다. 겉으로는 사람이 싸우는 것 같지만 영적 차원으로 보면 악이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억울함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다. ‘악이 악을 부르는 현상’을 동양에서는 주화입마(走火入魔, 화를 뛰어다니게 해서 악마를 불러들인다)라고 했는데, 이는 개인과 사회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예수님은 서로 맞물려 있는 양쪽의 악을 침묵시켜 쫓아내고, 사람을 치유해주셨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아야

가해자는 극악한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을 위해서도 피를 흘리셨고, 피해자를 사랑하는 만큼 가해자도 사랑하신다. 성폭력 고소와 공개적인 미투는 그 성격이 다르다. 죄인이라 해서 그를 대중재판이라는 불구덩이에 넣을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고,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7-21 참조)라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한다.

치유의 영적 원리를 이해하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이를 실천하여 미투의 방향이 용서로 바뀌기를 소망한다. 이 운동의 창설자 타라나 버크도 미투 운동의 변질을 우려하며 “어떤 이들은 치유와 정의를 얻기 위해 가해자의 이름을 크게 소리치고 싶어한다. 이를 이해하지만 이보다 더 긴 여정과 나아가야 할 길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고 했다. 미투가 일치로 가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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